마쓰야마 / Matsuyama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마쓰야마. 감귤국 에히메현의 현청 소재지이자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으로 유명한 도시기도 하다. 한국에서 제주항공 직항이 있어 한국인이 바글바글한 소도시인데, 여행내내 잘 마주치지 못한 한국인들을 대량으로 만나기도 했다. 연말연초 연휴때문인지 거리에 나와있는 이들이 대부분 한국인이라 사실상 거 어디 둔산에 나간 것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딱히 계획을 크게 세우지 않고 3박 4일을 보냈다. 여유롭고자 했는데 크게 여유롭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시간의 효율을 생각하며 다녔기 때문인 것 같은데, 문득 여유와 효율이 상반되는 말인지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도고온천은 좋았지만, 마쓰야마라는 도시 자체의 매력은 사실 잘 모르겠다. 소도시 여행이라기엔 너무 도시이며 근교가 한정적이라 주말을 낀 2박 3일의 짧은 여행으로 들리기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마쓰야마에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후에 시마나미 해도 투어를 하게된다면 어쨌거나 한 번은 들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요산선을 타고 도착한 마쓰야마역. 다카마쓰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 파스모를 찍고 들어왔는데, 나가는 개찰구에 태깅하는 기기가 없었다. 알고보니 마쓰야마에서는 자체 교통카드만 사용가능한 것 같았다. 역무원을 통해 카드 사용 금액을 환불받는 대신 현금으로 정산을 하고 나올 수 있었다.
역 내부의 샵에서 만난 감귤주스 수도꼭지. 비로소 감귤국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한 잔을 시원하게 마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수도꼭지는 시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여기가 제일 비싼 스팟이었다. 그래도 깔끔하고 맛있게 먹었으니~
해가 져가는 시간. 고민하다 역 근처의 북오프로 향했다. 사실 마쓰야마에도 노면전차가 다니기에 노면전차 패스를 사고 싶었는데, 최근 정책의 변경으로 오프라인 구매는 폐지되고 온라인으로만 구매가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한다. 온라인 구매를 위해 역에서 앱을 설치하고 난리 부르스를 겪었는데, 결국에는 일본 휴대폰 번호가 없어 실패. 역 근처 북오프까지 다시 오는 것은 낭비일 것 같아 이번에 들렸다 가보기로 했다.
ZARD 무새가 또..
키린지 앨범들은 전체 품절.
일본에서 만난 김연자의 월하미인.
12월의 마지막 날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구매한 마리오 피규어. 지난 번 도쿄 시부야의 닌텐도샵의 거대 마리오상을 보고 뽐뿌가 왔던 제품인데, 결국 이제서야 사게 되었다. 요즘 책상에 올려두고 매일 아침 파이팅 중이다.
시내를 가로질러 호텔로 걸어갔다. 마쓰야마성이 저렇게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줄 몰랐다.
주황색의 노면전차도 구경했다.
오카이도 근처의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정말 2024년의 마지막 날이라 갈 수 있는 곳들이 제한적이었다. 일단 문을 닫기 직전인 10 FACTORY에서
감귤주스 샘플러를 마셔봤다.
이렇게 많은 귤의 종류가 있을 줄은 몰랐다. 이 중 세 개를 마신 것인데, 다른 맛들도 궁금해지는 신기한 베리에이션이었다.
가장 궁금한 주스는 품절이라 아쉬웠지만, 그 다음으로 궁금한 프리미엄 라인의 주스를 한 병 사와 호텔에 두고 마셨다.
저녁으로는 도미밥 (타이메시). 솥밥 형태의 호조 스타일과 계란간장회무침 형태의 우와지마 스타일이 있었는데, 오늘 저녁으로 먹은 것은 우와지마 스타일의 타이메시였다. 도미 자체에 큰 감칠맛이 없다보니 이런 식의 식사가 나올 수 있었구나 싶었다. 한번쯤 먹어볼만한 맛. 물론 예전 긴자에 있었던 참깨된장무침 형태의 타이메시가 더 인상적이지만.
상점가를 마저 구경했다. 또 마주친 감귤 꼭지. 에히메에선 수도꼭지를 틀면 감귤주스가 나온다는 것이 헛말이 아니었구나란 생각을 했다.
감귤 그래프.
마트에 들러 감귤도 하나 사다 먹어볼까 싶었는데, 두 개에 645엔이라니. 과감히 패스. 결국 나중에 시식으로 먹어보게 되었다. 오렌지와 감귤 어느 중간의 맛. 생각해보면 제주에서의 천혜향, 레드향같은 다양한 품종이 이런 느낌이 아닌걸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도고 온천까지 걸어가봤다. 도고온천역에 위치한 스타벅스.
도고 온천 상점가.
그 상점가에 있는 귤 뽑기 기계.
밤에 구경하게 된 도고 온천. 오늘 개운하게 목욕을 하고 들어갈까 하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와보기로 했다.
대신 도고 온천이 내려다 보이는 족욕탕으로 향했다.
족욕탕에 앉아 발을 담갔다.
도고 온천 뷰.
코끝은 시리고, 발은 따뜻하고. 거기에 필요한 맥주 한 잔. 나스메 소세키의 <도련님> 전자책을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즐기다 내려온 것 같다. 2024년의 마지막 날이 꽤나 풍성해졌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 오카이도에 있는 돈키호테에 들렀다.
결국 만나게 된 키나코 모찌. 호텔로 돌아가 자정의 종소리를 듣고 서둘러 잠들었다.
전날 체크인을 할 때 로비에 붙은 안내문을 보게되었는데, 마쓰야마 성에서 2025년의 첫 일출 행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또 놓칠 수는 없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로프웨이를 타러 이른 새벽에 나왔다.
말로만 듣던 1인 로프웨이를 탔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마주하게된 일출.
올해는 뜨는 해와 지는 해를 챙겨볼 수 있는 한 해 이기를 빌었다.
다시 시내로 내려가려는 인파. 어마무시했다 정말~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로프웨이 역 앞의 <도련님> 동상. 책을 다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봇짱은 이해가 되지만 왜 마돈나가 메인 캐릭터처럼 시내 곳곳에 캐릭터화 되어있는지 궁금해진다.
전차를 타고 도고 온천으로 향했다. 도고 온천은 두 개의 별관과 본관으로 되어있고, 본관은 총 4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로 올라갈 수록 점점 더 프라이빗해지고 비싸지는 구조. 첫 해를 기념하는 느낌으로 3층의 개인실을 빌렸다.
90분동안 총 두 가지 종류의 온천을 이용할 수 있고, 개인실에서 다과를 곁들이며 쉴 수도 있는 시스템이었다. 온천은 타마노유와
카미노유 두 종류가 있었다. 타마노유는 3층과 2층을 이용하는 사람들만 이용 가능하고, 카미노유는 일반 대중목욕탕처럼 오픈되어 있다보니 돗데기 시장처럼 복작거렸다. 두 곳 모두 유가마라고 불리는 가마에서 물이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욕실을 둘러싼 중국 화풍의 그림도 흥미로웠다.
충분히 피로를 푼 뒤에 다시 개인실로 돌아왔다.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의 주인공 도련님이 즐겼던 사치스러운 취미를 떠올리며 쉬었다. 목욕 후 먹는 당고가 생각보다 맛있어 기념품으로도 사왔다.
창문을 열어두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겨울 바람을 즐겼다.
테라스에서는 온천 내부의 구조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알고보니까 내가 머문 방이 실제로 나쓰메 소세키가 머물렀던 방의 건너편 방이었다. 90분을 마치고 나오는데 점원분께서 이 방을 구경해보겠냐 열어주셨다.
동경대까지 나온 수재였던 나쓰메 소세키가 이 곳 마쓰야마의 중학교 교사로 취직해 1년여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한다. 그래서인지 <도련님>은 무척 자전적인 소설처럼 느껴지는데, 마쓰야마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는 길. 계단이 무척 가파르다.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상점가를 구경했다. 역시 빠질 수 없는 지브리샵. 컨셉에 걸맞게 센과 치히로 에디션으로 가득했다.
감귤 에디션.
도고 온천역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들어왔다. 메이지 시대의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는 지점.
창가에 자리를 잡아 따뜻한 호지차 라떼를 마시며 팜플렛을 읽었다. 근방에 어딜 가면 좋을지 탐색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이른 기상으로 조금 노곤해질뻔 했는데 정신을 차렸다.
어젯밤 산책으로 보러왔던 봇짱 열차를 다시 대낮에 한 번 더 구경했다. 시간이 맞지 않아 직접 타보진 못했지만, 어쨌거나 <도련님>의 정취를 느끼며.
도고 온천 지역의 온천수를 분배하는 분탕장 중 하나.
여러가지 물이 배합되어 각 온천으로 분배된다 한다.
분탕장 앞에선 방금 배합된 물을 만져볼 수도 있었다. 뜨끈했다.
휴일에는 한 시간에 두 번 울린다는 봇짱 카라쿠리 시계를 구경왔다. 시간이 되니 숨겨져있던 인형들이 등장하고, 시계탑이 확장되어 움직였다. 아직 <도련님>을 다 읽지 않은 터라 스포당할까 걱정했다.
시계탑 옆의 족욕탕. 어제도 봤던 공간인데, 어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유가마가 시야에 잡힌다. 역시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다르다.
마그넷을 사고 싶어 돌아다녔는데 마땅히 맘에드는 것이 없었다. 도고 온천의 온전한 구조가 담긴 클래식한 것으로 하나 구매.
도고 온천 근방에 지역 사케 양조장이 있었는데, 왠지 오늘은 휴일일 것만 같았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온 식당에서 그 양조장의 사케를 팔고 있어 도쿠리로 시켰다.
오늘의 메뉴는 호조 스타일 도미 솥밥. 어제 먹은 우와지마식보다 맛있었다. 역시 도미는 익혀야.
식사를 마치고선 도고맥주관에서 맥주를 한 잔 테이크아웃해 벤치에 앉아 도고 온천을 바라보며 마셨다.
중첩된 지붕에서 오는 아름다움. 완전히 반듯한 평면이 아닌 곡면에서 오는 느낌이 위태롭다기 보다 우아해 보였다.
어지럽게 오가는 파이프들이 질서 정연해 보이기도 했다.
맥주를 끝내고 다시 산책을 나섰다. 도고 온천 뒷 편에서 전시 중인 과거 도고 온천의 자재들. 이전의 facade를 만져보고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에히메 현식 신 년 맞이에 빠질 수 없는 감귤.
도고 공원으로 걸어 나왔다. 1894년까지 도고 온천에서 쓰였다는 유가마. 나쓰메 소세키가 다카마쓰에 부임한게 1895년이니 그는 꽤나 신식의 유가마에서 나온 물에 몸을 담갔겠구나.
다시 마쓰야마 시내로 복귀했다. 호텔에서 재정비를 한 뒤 다시 밖으로 나섰다. 호텔 뒷 편에 있는 반스이소. 1900년대에 지어진 프랑스풍 건물이라는데 사실 크게 감흥은 없어 내부에 들어가진 않았다.
대신 반스이소 옆켠에 위치한 카페 아이쇼테이에 들렀다.
나쓰메 소세키가 마쓰야마에 살던 시절 하숙했던 자리라 한다. <도련님>에 등장하는 골동품 판매상 하숙집의 그 자리인듯 했다.
커피를 한 잔 시켜 노곤함을 달랬다.
숨을 고른 뒤 같은 부지에 위치한 “언덕 위의 구름 뮤지엄” 으로.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 한다.
정말 말이 끄는 마차라니, 잘 상상되지 않는다.
사실 뮤지엄 자체는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는 건물은 하중을 버티는 구름다리 이외에 그 비움과 맞춤의 철학에 걸맞는 전시가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전시 내용도 군국주의에 가까운 컨텐츠라… 접객은 무척 친절했는데, 티켓을 끊으니 주사위를 던지게 해주셨고, 주사위를 던져 무려 1위에 걸려버리는 행운을..! 그런데 선물로 받은 것이 뮤지엄 컨텐츠를 담은 책자라, 나오는 길에 그냥 반납을 하겠다 했더니만 대신 더 낮은 순위의 선물인 다루마 오토시로 바꾸어 주셨다. 집에 돌아와 해보니 영 어려운 게임지만 어쨌거나.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다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마쓰야마 성으로 올라간다.
이제야 제대로 보는 마쓰야마 성.
아무래도 수미쌍관을 맞추려면 일몰을 봐야할 것만 같았다.
저 멀리 바닷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올해의 첫 해. 성에서 반대편으로 내려와 이런 저런 쇼핑을 하다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먹은 것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낫또. 불편하게 비닐을 벗기는 쇼를 할 필요 없이 간단하게 뚜껑을 열고 반으로 가르면 간장과 겨자가 틈새로 떨어진다. 정말 스바라시하다.
시마나미 해도를 다녀온 날 저녁, 마쓰야마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허벅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무런 맥을 못추는 밤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뭐든 먹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찾아간 식당.
일본에 가기전 <런치의 여왕>을 끝냈는데 아무래도 오므라이스를 먹고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곁들인 음료는 마쓰야마 근교의 도시 오즈에서 난 적시소로 만든 하이볼. 한국에서도 이런 로컬 식재료로 다양한 주류 메뉴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어 들린 나쓰메 소세키의 두 번째 하숙집 터. 이제는 주차장이 되어버린. 하숙집에서 나와 전차를 타고 도고 온천에 들렀다가 학교로 출근하는 루트가 머릿 속에 그려졌다.
편의점에 들렀다가 발견한 우매보시 한 알 포장! 최고의 맥주 안주였다.
다음날 아침. 오후 비행기라 시내에서 가지는 여유 시간이 좀 있었다. 감귤국의 경찰 표지판.
오늘은 문을 닫아 가보지 못했던 스위츠 집들을 가보기로 했다. 마쓰야마에서 유명하다는 롤케익. 첫 번째로 방문한 집은 로쿠지야. 아는 맛이었다. 센다이에서 먹었던 계란빵의 포슬 고소함이 그리워지는 풍미였다. 조금 아쉽.
점심으로는 도미 라면을. 역시 육수는 생선 육수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자연산과 양식 도미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간수이"에 가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간수이"에서 운영하는 라멘 스탠드에서 그 맛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어 좋았다.
후식으로 마시는 감귤 주스 한 잔.
두 번째 롤케익집인 이치로쿠. 여기는 생각보다 많이 달았다.
공항행 셔틀버스 시간이 삼십분쯤 남았을 때, 나쓰메 소세키가 근무했던 마쓰야마 히가시 고교(당시 마쓰야마 중학교)에 가보기로 급히 마음을 먹었다. 등짐을 메고 부리나케 걷는 중.
금요일이라 등교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저 정문까지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
<도련님> 속 짖궂은 학생들을 떠올리며, 구경을 마쳤다.
마쓰야마 공항은 수하물 검사가 깐깐하기로 유명했다. 번거로우니 그냥 위탁수하물을 맡길까 고민했지만 한국에 도착해 서둘러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가야 했기에, 모두 캐리온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역시 듣던대로 주어진 자그마한 지퍼백에 가지고 있는 모든 액체류를 담아야 했다. 올리브가 타이트할 뻔 했는데 다행히 잘 들어갔다.
도미와 감귤 패턴의 세면대.
도미 스프 캔 음료. 따끈하게 나온다. 하나를 구매해와 지금 냉장고에.
돌아오는 비행기는 제주항공 여객기였다. 탑승객도 승무원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