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쓰 / Takamatsu
우동의 고장 다카마쓰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다른 계획 없이 온전히 우동투어에만 전념하겠단 생각이었는데 연말 휴무와 겹쳐 문을 닫은 우동집들이 좀 있어 아쉬웠다.
조그만 소도시라 생각했는데, 카가와의 현청소재지답게 다카마쓰는 꽤나 큰 도시였다. 게다가 교통이 편한 편은 아니었는데, 시의 곳곳에 흩뿌려진 우동투어를 다니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소요되기도 했다. 우동버스나 택시투어를 했다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기도 했다.
일본어로 표기된 본래의 발음은 타카마츠에 가까운 것 같지만,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다카마쓰로 표기한다.
나오시마에서 페리를 타고 건너와 호텔로 바로 향했다. 방에 짐을 풀어두고 재빠르게 첫번째 우동집으로 향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우동보 다카마쓰 본점”. 영업 종료 시간까지 넉넉하게 도착했는데도 턱걸이로 웨이팅을 할 수 있었다. 점원분께서 내게 이 푯말을 주며 내 뒤에 웨이팅을 서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라 하셨다. 입장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그 시간동안 줄을 서려는 분들께 스미마셍을 말씀드려야 했다.
긴 웨이팅 끝에 입장해 처음 맛보는 다카마쓰의 우동. 카마타마 우동을 시키고 싶었는데 품절이라고. 대신 새우튀김 우동에 니혼슈를 곁들였다. 확실히 면발이~
배를 채우고 다카마쓰 시내를 구경다녔다. 예전부터 마킹해뒀던 루츠 레코즈에 들렀다.
아쉽게도 사고 싶었던 키린지 앨범은 없었다.
무척 탐이 나던 조니 미첼의 LP.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며 다시 내려두었다.
아까 페리를 타고 오며 알게된 사실인데 다카마쓰에서는 우동 말고도 이 호네쓰키도리라 불리는 통뼈 닭다리구이가 명물이라 한다. 내일부터는 우동 투어로 일정이 빡빡할 것 같아 오늘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결정. 영계와 노계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좀 더 촉촉하고 부드러운 영계로. 간이 짭쪼롬해 삿포로 흑맥과의 조화가 좋았다.
배가 불러 다카마쓰 시내 산책을 이어나갔다. 다카마쓰 마루가메 상점가 아케이드에서 마주친 돔. 밀라노를 연상시킨다.
아케이드 상점가를 가로지르는 노면전차가 인상적이었다.
시내를 탐방한 결과 전체적으로 다카마쓰의 물가가 꽤나 저렴한 느낌이었다. 보통 우동 자체도 500엔 언저리라 우동 투어도 부담이 없는데, 우동이 아닌 일반 식사도 가격이 괜찮게 느껴졌다.
아까 호네쓰키도리를 먹으러 간 곳은 잇가쿠라는 전문점이었는데, 거리를 탐방하다보니 일반 이자카야에서도 이 닭다리구이를 판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써붙어진 “우리 집엔 호네쓰키도리가 없어요” 안내판.
겨울이라 굴구이를 판매하는 집들도 꽤나 보였다. 한국이었다면 저렇게 양식된 굴을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 샷을 안내판에 넣진 않았을 것 같은데, 일본 감성이라 봐야하나.
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 근처 역으로 걸어가 다카마쓰의 노면전차인 “코토덴"의 1일 패스를 구매했다.
플랫폼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모습이 정겨웠다. 굉장히 애니메이션 재질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의 가족이 운영하는 신사로 나온 곳의 배경이 다카마쓰에 있는 절이라 한다.
코토덴은 세 개의 노선이 운영되고 있는데, 노선에 따라 열차에 둘러진 색이 달랐다.
흥겨운 안내판. 모션의 어떤 점에서 유쾌함이 느껴지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전차를 타고 한참을 걸어 도착한 두 번째 우동집, 사누키우동 우에하라야 본점.
웨이팅이 무척 길었다. 다음 식당도 솔드아웃 전에 가야했기에 마음이 무척 불안해졌다.
매밀국수와 알레루기의 콜라보.
드디어 입장.
식판을 들고 면만 주문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셀프로 조합하는 구조의 식당.
면도 직접 데우는 스타일이다.
스지나 오뎅도 맛있어 보였지만 오늘의 식사가 한참 남았기에 스킾.
근데 메뉴 선택을 좀 잘못한 느낌이었다. 카케 우동 대신 가마아게 우동을 시켰는데, 가마아게 우동은 갓 삶은 우동면을 쯔유에 찍어먹는 스타일이라 이 집의 대단하다는 육수를 맛볼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아쉬운대로 우동을 다 먹고 쯔유 사발에 국물을 조금 떠다가 맛만 보고 나왔다. 가쓰오부시가 아닌 멸치 육수 맛의 국물이었는데, 감칠맛이 정말 좋았다. 생각해보면 이번 우동투어에서 먹었던 우동 집들 중 이 우에하라야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붉은 색의 시도선을 타고 다음 음식점으로 부리나케 향했다.
코토덴의 마스코트인 펭귄이 너무 귀여워 한 컷.
한 시간 정도를 달렸다. 내릴 무렵에는 바닷가를 끼고 달려 보는 맛이 있었다.
부리나케 간 이유는 다카마쓰의 겨울 별미라는 방어즈케덮밥을 먹기위해! 시내에서도 몇군데 판매하는 곳이 있는 것 같았는데, 성에 차지 않아 보여 후사자키역까지 와서 먹게되었다. 이 곳도 우동집처럼 식판을 들고 음식을 고르는 카페테리아 형태였는데, 간파치 사시미도 맛있어보여 한 접시를 골랐다. 근데 방어는 한국식 대방어회에 묵은지쌈이 제일 맛있는 것 같긴 하다.
다시 후사자키역으로. 자그마한 무인역.
배가 적당히 차서 소화를 시켜야 할 것만 같았다. 로쿠만지 역에 내려 팔률사로 향하는 케이블카 정류장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고서는 몰랐는데, 꽤나 가파른 언덕길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팔률사가 위치한 암벽.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했다. 레트로한 안내판.
귀여운 등산열차를 타고 올라간다.
연식이 꽤 된다고 들었는데, 내부의 수동 개폐장치나 창틀을 보니 그 세월이 더 체감됐다.
한참을 올라 팔률사(아쿠리지)에 도착했다.
다카마쓰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었다.
세월이 느껴지는 지붕.
시코쿠에 있는 88개 사찰을 순례하는 코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 곳 팔률사는 그 중 85번째 절. 순례자가 입는 복장이 있다는데, 저 삿갓과 흰색 조끼가 디폴트인 것 같았다.
다음 절의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석.
오노미치에서처럼 스투파 형태의 지붕이 있었다.
팔률사엔 88개 절의 불상들이 모두 모아져있었다. 덕분에 약소하게나마 순례를 찍먹하는 느낌이었다.
이 순례길의 발자취를 시작한 쿠카이 대사 (흥법대사).
팔률사의 불상.
아직 완연한 가을.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기념품을 사가고 싶었는데 마땅한게 없었다.
역시 우동현답게.. 물건 대신 마음에 기념품을 담아왔다.
그리고 바로 시작된 우동투어.
우동 야마다야 본점.
주차장이 무척 크고, 식당 내부도 별도에 정원이 있을 정도로 큰 식당이었다. 나같은 도보 여행객이 아닌 차로 이동하는 가족 단위의 투어객이 많아 보였다.
힘이 있는 탱탱한 면발의 우동.
우동을 뚝딱 해치우고 다시 역으로 걸어내려가던 중 발견한 표지. 자동차 번호판이나 도시 곳곳에 쓰여진 향천현이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이게 바로 카가와현의 한자였다. 카가와였다니!
오래된 목조 건물의 비밀.
코토덴을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드디어 맛보게된 카가와현의 전통음식이라는 앙모찌 조니. 팥떡을 넣은 흰 된장 떡국이었다. 의외로 단짠의 조화가 무척 재밌고 맛있었다. 다만, 된장국 본연의 맛을 추구하기 위한 무의 포지션이 꽤나 이질적이었다. 먹어보고 싶었던 간장콩도 사이드로 나와 맛볼 수 있었다.
배를 떠껀하게 채우고 다카마쓰 심볼 빌딩으로 향했다. 저 꼭대기에 무료 전망대가 있다해 구경할겸.
서두른 덕분에 석양을 구경할 수 있었다.
반대쪽에 위치한 터만 남았다는 다카마쓰성도 구경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같은 건물에 있는 기념품샵에 들렀다. 에히메현의 귤 마스코트가 여기에 벌써!
우동 마그넷들. 나도 하나 챙겼다.
순례복도 판매 중이었다.
이번에 일정 상 방문하지 못한 쇼도시마의 올리브를 기념품으로 샀다. 다음엔 쇼도시마에도 가보고 싶다.
다카마쓰에 여러 크래프트 비어샵들이 있는 것 같았다. 다카마쓰서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려 두 곳 정도 가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가본 OHLOY 브루잉.
Ohloy는 일본어로 단비라는 뜻이라 한다. 무엇을 마실까 무척 고민하다, 4번을 마셔보기로.
맥주라기 보단 탄산이 살짝 첨가된 레몬하이의 느낌이라 놀랐다. 근데 잔이 탐났다.
샵의 한 켠에 귀여운 굿즈들을 전시해 뒀는데, 센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올까 고민하던 키링.
다시 코토덴을 타고 다음 브루어리로 향했다.
세토우치 비어가 운영하는 Riverside 351. 공장 한켠을 바로 운영중이다.
너무 연말인데다 가게도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어, 나와 점원 두 명의 숨막히는 대화가 이어졌다. 짧은 일본어로 이번 여행의 소회를 공유하기가 버거웠다. 어찌되었거나 무엇을 마실지 고민하다 주문하게된 8종류의 샘플러. 친절한 점원분께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시간차를 두며 맥주를 따라주셨다.
어우, 여섯잔쯤 되었을 땐 배도 부르고 술기운도 올라와 꽤나 힘들었다. 다행히 한 분이 더 들어오셔서 셋이서 얘기를 나누며 마셨다. 히로시마 출신이셨는데, 다음 여행 때 가보라며 오노미치의 괜찮은 바를 알려주셨다.
기념품으로 카마타마버터 우동 맥주를 포장해왔다. 점원분께서 말씀해주시길, 디자인은 우동이지만 실제로 밀을 썼다는 것만 같을뿐 우동맛은 아니라고ㅎㅎ..
가와라마치 역에서 마주친 화장실. 세 개나 필요한 사인.
코토덴은 마스코트를 정말 잘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을 맨 채 마지막 우동집으로 향한다. 사카에다 우동 본점.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포장 손님과 매장 손님이 무척 많았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면을 주문하고 알아서 조합해 먹는 셀프 시스템.
육수 레버.
드디어 맛보게 된 카마타마 우동과 치쿠와 튀김. 건강한 맛이었다. 이렇게 유부초밥까지 먹고 650엔이라니.
이제 모든 투어를 마치고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버스 출발까지 10분정도 남았었는데, 왠지 모를 바람이 들어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2시간이면 가는 버스 대신, 5시간이 걸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가보기로.
타고가는 요산선은 두 칸짜리 완행열차.
12월의 마지막 날을, 스스로를 위한 선물같은 마음으로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순간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떠올려 봤을 때, 바닷가를 달리는 기차에서 독서를 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지막 여행지인 마쓰야마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