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미치 / Onomichi
오노미치는 큰 계획 없이 들리게된 도시였다. 히로시마에서 나오시마로 이동하는 완행열차에서 잠깐 내려 점심 정도를 먹고 갈 생각이었다.
오노미치에 도착해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걸어가던 중, 오노미치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 촬영지라는 사실을 알게되며 심각할만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계획했던 구라시키와 오카야마 관광을 취소하고 오노미치에 길게 머무르기로 했다.
여행이 왜 즐거운가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된 시간이었다. 다음에 시마나미 해도 투어를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땐 반드시 오노미치에 며칠을 머물며 도시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
히로시마에서 오노미치로 가는 완행 열차. 한국은 매서운 추위에 귀가 떨어질 것 같았는데, 아직도 단풍이 완연한 일본.
오노미치역에 도착했다. 코인락커에 짐을 넣어두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역에서 나와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건너편 무카이시마의 조선소가 눈길을 끌었다.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의 포스터. <퍼펙트 데이즈>의 야쿠쇼 코지가 방문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바닷가 제방에서 보게된 <동경 이야기>의 포스터.
안내문에 적힌 QR코드를 오픈하니 구글맵에 촬영지 목록이 로드되었다. 덕분에 하라 세츠코와 오즈 야스지로 순례가 되어버렸다. 예전에 방문한 아타미가 순례의 전부일거라 생각해왔는데, 생각해보니 당연히 영화에서 등장한 고향 마을이 있어야 했다. 그게 오노미치였다니!
골목 골목 사이로 보이는 대단한 언덕들이 궁금했다. 일단은 이따 다시 가보기로 하며.
주말에도 개방해둔 오노미치 시청의 로비. 잠시 몸도 녹이고 화장실도 들렸다.
다시 마주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엽서도 구매했다. 나중에 보니 역에서도 팔고있긴 했지만ㅎㅎ
점심으로 가려는 식당의 웨이팅이 너무 길어, 일단 간단한 요기를 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멸치매실 주먹밥을 하나 먹었다.
영화에 등장했던 촬영지 중 하나인 료칸 “다케무라야”. 다음에 오노미치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이 곳에서 반드시 1박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료칸에서 나와 촬영지를 돌아다녔을 스탭들과 배우들을 생각했다.
다시 길을 걸어 두 번째 촬영지로 향한다. 기찻길을 통과하면 저 위의 “조도지"로 갈 수 있다.
<동경 이야기>에서 등장하던 기차씬이 생각났다. 그 철길이 이런 언덕 배기의 철로였다니. 지금은 그 때의 정취가 남아있지 않다며 사람들이 아쉬워 한다지만, 충분히 그 향기가 남아있었다.
지붕이 감싼 스투파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이후에 다카마쓰에서도 비슷한 양식을 보게되었는데, 이게 이 지방의 특징인지 일본 전역적인 특징인지 궁금했다.
드디어 만나게 된 석등.
영화에서 장례식이 열렸고, 포스터에도 등장한 그 석등이다.
포스터에 따르면 좀 더 담장 쪽에 붙어 있거나, 아니면 뒤로 보이는 건물이 없어야 하는데 이 곳으로 이동한 것인지 혹은 절 자체 구조의 변동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담장에서 바라본 오노미치의 모습. 슈키치와 노리코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석등 근처를 배회하며 잠깐 감상에 빠지기도 했다.
절을 빠져 나왔다.
시골에도 만나볼 수 있는 낙서들.
후쿠젠지로 향했다. 영화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오노미치를 비치는 전경에 등장했었다 한다.
절에서 보이는 케이블카. 이제 케이블카를 타러 가야겠다.
케이블카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쯤 탑승 줄이 무척 길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매표소 옆에 걸어 올라가면 20분! 이라고 적혀있길래 잠시 고민하다 냉큼 걷기 시작했다.
이 등산로는 고양이 골목으로도 유명하다 했다.
곳곳에 고양이 관련된 상점이 많았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길고양이는 한 마리도 마주치지 못했다.
산을 오르다 마주친 텐네이지.
그동안 걸어갔던 길들을 쭉 바라볼 수 있었다.
점점 헷갈리기 시작하는 안내판. 어쨌거나 잘 올라갔다.
센코지를 통과해 전망대에 올랐다. 굉장히 아름다운 비주얼의 전망대.
시마나미 해도가 중첩되어 보이는데 참 아름다웠다.
언젠가 저 오노미치 대교를 자전거로 건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내려올 때 케이블카를 탈까 고민하다 다시 차근히 걸어 내려왔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갔는데도 여전히 웨이팅이 길던 오노미치 라멘집 마루보시. 어제 히로시마의 비어스탠드 시게토미의 두 로컬분이 추천해주신 오노미치의 대표 메뉴였다. 듣던대로 감칠맛이 폭발하는 너무 맛있는 쇼유라멘이었다. 여전히 센다이에서 먹었던 시오라멘이 올해의 베스트 라멘이지만, 내가 쇼유라멘도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시간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군침이 나오네.
오노미치 혼도리 아케이드엔 오래된 상점을 개조해 만든 귀여운 식당들이 많았다. 이 오뎅바에서도 따끈하게 한 잔 걸치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아쉽게 스킾.
만들지 못한 김밥사이트를 떠올렸다.
연말 휴일이 겹쳐 상점들이 많이 닫아 아쉬웠다.
차례를 위한 꽃을 들고다니는 분들을 때때로 마주치기도 했다.
간단히 맥주 한 잔을 하고 가려 했던 바가 브레이크타임이라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교자에 맥주를 마실 생각으로 라멘집에서도 간단하게 먹었는데.. 또르르..
대신 오노미치에서 유명하다는 가마보코집에서 어묵을 하나 포장했다. 근데 알고보니 내가 주문한건 따끈한 가마보코가 아니라 차가운 어묵핫도그였다. 레몬크림소스를 곁들인. 생각한 맛과 달라 좀 실망했지만, 맛 자체는 무척 좋았다.
상점가를 돌아 역으로 향했다.
다시 완행열차를 타고 오카야마로 향한다.
이번 여행에서 때때로 마주친 플랫폼의 의자들. 저 의자는 2인용이지만, 1인용 좌석들도 플랫폼에 수직한 방향으로 놓여있는 것들이 신기했다.
오카야마역에 도착. 우노로 향하는 열차를 7번 플랫폼에서 타야했다. 해리포터의 9와 3/4 승강장 같던 7번 플랫폼 찾기. 6번과 8번 사이에서 쭉 따라 걸어가다보니 작은 플랫폼이 등장했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우노역에 도착했다.
나오시마로 향하는 이른 페리를 타기 위해 항구 근처의 숙소를 잡았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운영하는 곳.
저녁을 먹으러 뒤늦게 달려간 곳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연말 휴무가 무섭다.
스낵바를 제외하고선 거의 유일하게 오픈한 밥집에서 치킨난반 정식을 먹었다. 든든하고 맛있었다.
이름이 “오션 빌리지"인 것이 못내 미더웠었는데, 정말 바닷가 마을의 식당이라 순수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으신 것 같았다.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봐서 돌아가기로 했다. 일본에서도 곶감을 먹는구나.
오카야마산 와인이 궁금했다. 다음 기회에.
대단한 배차 간격.
호텔로 돌아와 하이볼을 한 잔 하며 오늘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내일의 여행을 준비하며 일찍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