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이시 / Shiroishi
센다이에 가는 김에 이수영 4집 앨범 촬영지를 꼭 찾아봐야겠다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찾고 찾다가 결국 센다이가 아닌 시로이시의 한 료칸(유누시 이치조, Yunushi Ichijō, 時音の宿 湯主一條)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시로이시에서도 작은 외딴 온천마을이라 24시간은 온전히 료칸에서만 보낼 생각으로 예약을 했다.
대단한 접객의 료칸이었다. 신발을 신고 벗는 것부터 식사를 하러 식당에 이동하는 것까지 곳곳에 배치된 직원분들과 전담으로 배정된 직원분의 도움으로 진행되었다. 나에겐 무척이나 어색한 공주님 놀이 같았달까.. 밤 늦게 작은 마을을 산책하고, 텅 빈 온천에서 목욕을 하는 시간이 좋았다. 되지 않는 일본어로 스몰톡을 하는 시간들도 잦았는데, 땀을 삐질 흘리기도 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문득 어째서 나는 이수영 4집 CD를 갖게되었을까 라는 질문이 맴돌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모종의 이유로 선물을 해주셨던 것 같다. 처음으로 가져보게된 음악 CD를 반복해 듣던 수많은 밤. 이어폰을 통해 나에게만 온전히 들리는 음악의 반짝거림에 홀딱 반해, 집에 있던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컴필레이션 CD들을 모아 듣기도 하던 시절. 지금의 음악에 대한 감성은 모두 그 시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괜시리 코끝이 좀 찡하기도 했다. 이번에 시로이시를 다녀왔어야만 했던 이유가 좀 설명되기도 하는 것 같았다.
도호쿠 본선을 타고 센다이에서 시로이시로 넘어간다.
한 시간 남짓의 여행 끝에 시로이시역에 도착. 이번 센다이 여행에서 무척 잘 쓴 센다이 마루코토 패스. 시로이시역은 패스로 갈 수 있는 가장 끝 역중 하나인 역이었다.
오니기리같이 생긴 무사 마스코트가 시로이시의 첫인상이었다.
미리 료칸에 송영버스를 신청해 놓았다. 앞으로의 여정때문에 크고 무거운 캐리어를 갖고왔는데, 여기선 고작 1박임에도 내 짐을 차에서 차로, 입구에서 방으로 계속 이동해주시던 직원분들께 죄송했다.
버스를 타고 료칸으로 가는 길. 시 곳곳에 마스코트가.
료칸이 있는 동네는 길이 무척 좁은 탓에 큰 송영버스가 지나갈 수 없어, 작은 미니밴으로 갈아타고 료칸으로 올라왔다. 로비에 앉아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체크인을 진행했다.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왔다. 건너편 본관이 보이는 건물을 미리 요청했는데, 딱 맞게 해주셔 감동이었다.
지은지 100년이 넘어 이제는 식당으로만 사용하고 객실로는 사용하지 않는 본관. 이수영 4집 자켓 앨범도 저 건물에서 촬영한 듯 했다.
노천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저녁 식사 전에 산책을 했다.
본관과 신관을 이어주는 다리. 직원분들이 말씀하시길 시간의 다리라고 부른다 하셨다.
이 창문에 매달려 찍은 것이었구나.
석식 시간이 되었다. 본관으로 이동해 넓은 방에 혼자 앉아 코스 요리를 즐겼다.
메인 요리였던 소고기가 너무 맛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북아시아의 마블링 사랑은 어쩔 수 없어!
아까 송영버스를 타고 오며 동네에 양조장이 있는걸 봐뒀는데, 드링크 메뉴에 해당 양조장의 사케가 있길래 시켜봤다.
한국의 찌개 같은 스타일의 수프와 간장 베이스의 수프 중 선택할 수 있다 하셔서 선택한 찌개 스타일의 수프.
놀랍게도 너무 한국의 동태찌개 맛이었는데, 메뉴를 다시 읽어보니 “찌개스-프"라고 되어있는걸 보니 쉐프님이 한국에서 맛보시고 메뉴에 넣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흰 밥과 오목밥(고모쿠고항, 五目ご飯) 중에서도 고민을 했는데, 직원분께서 말씀해주시길 흰 밥은 내일 아침에도 맛볼 수 있으니 오목밥이 나을거라고.
12월의 시작인 오늘부터 개시한 크리스마스 에디션 디저트라고.
밥을 먹고 자유롭게 본관을 구경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젠 더이상 같은 창문 유리를 만들 방법이 없어, 이걸 깨트리면 영영 끝이라 한다.
다른 층에 있는 옛 객실도 구경했다.
식사가 너무 과했는지 배가 무척 불렀다. 이수영 4집을 들으며 동네를 산책했다. 이 마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나타낸 벽화인지.
앨범 전체를 한 번 듣는데 한 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고요한 정취를 느끼며 사뿐사뿐 걸었다.
밤 온천을 즐기러.
늦은 밤이라 사람이 없어 좋았다. 아까 낮엔 효고현에서 오신 아주머니와 짧은 스몰톡을.. 언젠간 효고에도 가보고 싶다.
다음 날 아침. 창문 사이로 보이는 정경이 행복했다.
조식 전 짧은 온천. 오늘도 홀로.
마지막 가을을 듬뿍 느끼고 간다.
다시 객실로 돌아와 정비를 했다.
오늘의 아침 메뉴.
너무 귀여웠던 주전자 수저 받침. 체크아웃 때 구매할 수 있었는데, 막상 실용성은 떨어질 것 같아 구경만 했다.
디저트. 커피 잔의 클로버가 귀엽다 생각했는데
다 먹을 때쯤엔 하트로 변하는 컵이었다.
낮 시간의 본관을 구경했다.
문득 정확하게 어디에 매달려 있던걸까 궁금해 자켓 사진과 비교해보니, 2층이 아니라 1층이었다. 여태까지 2층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지상에서 무척 가까운 칸이었다.
촬영자도 저 다리에서 찍었을거라 생각했는데, 구도상 그냥 길에서 찍었던 거구나..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된 시로이시의 명물인 목각인형을 나타낸 가로등.
짧은 아침 산책 후
로비에서 료칸의 엽서를 샀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정말 체크아웃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연장해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출장은 출장이기에.
체크아웃을 기다리는 동안 구경할 수 있는 샵. 료칸에 머무는 동안 사용한 컵이나 다기, 젓가락 같은 기구들을 팔고 있었다. 좋은 마케팅이란 생각이 들었다.
송영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로이시역. 이번에 나는 시로이시자이 신칸센 역으로.
송영버스 덕분에 편하게 이동했다.
신칸센 탑승까진 시간이 좀 남아, 시로이시자이 역에 있는 작은 뮤지엄을 구경했다. 명물이라는 목각인형이지만 좀 크리피하고 무섭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라스트 레터>가 시로이시에서 촬영되었다 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센다이와 시로이시 곳곳에서 촬영되었구나.
시로이시의 명물 중 하나라는 우멘. 어제 석식에서 한국어로 냉면이라고 잘못 설명해주신 그 면이 바로 이 명물 온면이었다. 누가봐도 온면인데 냉면이라 해주시는 미스커뮤니케이션이 났던 부분. 덕분에 재밌는 추억이 생겼다.
역이 큰데 소프트웨어는 작아 기념품을 살만한 공간이 편의점 하나밖에 없었다. 어제 호텔 방에 웰컴푸드로 있던 계란빵이 너무 맛있어 같은 걸 사고 싶었는데, 그건 없었다.
대신 같은 브랜드의 다른 빵을 샀다.
바다와 가깝지만 바다가 보이지 않는 내륙의 도시.
타고왔던 도호쿠 신칸센을 타고 다시 도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