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 Hong Kong

홍콩으로 포닥 생활을 떠난 동혁이를 보러 미라클모닝 친구들이 오랜만에 홍콩에서 모였다.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점심을 제외하고서는 완전한 자유의 시간이라 가보고 싶었던 홍콩을 돌아다녔다. 시간이 더 많았다면 홍콩섬 남부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일정이 짧았다.

홍콩에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가게될 줄은 몰랐는데. 작년 겨울과는 날씨가 정반대로 바뀌어서인지, 너무 짧은 시간동안 머물러서인지, 일에 마음이 치여서인지, 혼자라서인지, 어쨌거나 감흥이 없진 않은 여행이었다.

혹시라도 시간이 비는데 투두리스트를 비워두게 될까봐 주성철 기자의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를 스키밍하고 갔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홍콩에 자주 가봤다고 생각하는데도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태산인게 참 화려하고 깊은 도시라는 생각이다.

다음 홍콩은 언제일지.




비행기가 대만 상공을 가로질러 날았다. 덕분에 타이페이의 야경을 구경했다.



타이중인지 장화인지 알 수 없는 도시를 지나치는데 저멀리 어둡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거대한 산맥과 그걸 가린 구름이 장관을 이뤘다.



새벽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서둘러 잠들었다.



가보고 싶었던 이비스에 머물렀는데 깜짝 놀랐다. 좌우로 보이는 퀸즈 테라스의 고층 에어비엔비에서 숙박했던적이 있는데, 그 땐 이비스 건물이 없었던터라 이런 뷰일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뜻밖의 추억여행이었다.



점심을 포장하러 근처 딤섬집에. 여기도 와보고 싶었는데 결국 와보게 되는구나. 읽을 수 없는 메뉴판에 잠시 동공이 흔들렸지만 차분히 먹고싶은 딤섬을 말씀드렸다.



번을 담은 염차가 지나가는데 저걸 추가로 주문해 말아를 잠깐 고민했다.



결국 안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는날 이걸 먹지 않은게 어찌나 후회되던지. 갓만들어 윤기가 좔좔 흐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번을 마주치는게 쉬운 기회는 아니었는데.



다시 호텔로 돌아와 일과를 마치고 거리로 나섰다. 새삼 요즘 홍콩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황소였다.



트램을 타고 타이항에 가보기로 했다.



마음이 콩닥거릴 정도로 사실 멘탈이 좋지 않았다.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고민한 회의 자료였는데, 어쩌면 스스로를 속였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밥값을 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나의 고민이 뒤섞였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트램에 앉아 창밖을 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트램이 헤네시 로드를 따라 달렸다. 홍콩으로 오기 전 아이패드에 장학우, 탕웨이 주연의 <크로싱 헤네시>를 다운받아 살짝 봤기에 괜히 더 눈길이 갔나보다. 영화가 이 길을 두고 있는 두 가게 사람들의 이야기라.



타이항에 도착했다. 아는 것 없이, 게획없이 걸어 구경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마음이 가는 동네는 아니었지만, 주중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텅빈 마을의 느낌이 좋았다.



저녁에 미라클모닝 모임이 예정되어 있어 일정이 애매했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도 한 두시간이 붕 뜰 것 같아 타이항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기로 했다. 괜찮아 보이는 카페가 없어 그냥 텅빈 펍에 들어갔다.



해피아워라서 맥주를 한 잔. 맥주 맛은 좋았는데, 오른쪽 왼쪽 다리 모두 모기에 엄청 뜯겼다.



대만도 아닌데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한 페이지 같은 아파트 뒤 계단을 지나쳤다.



지하철을 탈까 하다가, 다시 트램을 타고 셩완으로 향했다.



또 다시 다른 이들의 삶을 구경하며.









드디어 호텔이 있는 셩완에 다다랐다. 덕보도(德輔道)가 Des Voeux Rd로 읽히는 홍콩의 마법.



어쨌거나 미라클모닝 친구들을 만나 오랜만에 격조를 터놓고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태오와 규형이도 볼 수 있어 좋았다.



다음날 늦은 아침. 점심 때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PMQ에 구경가보기로 했다. 가는길에 마주친 욕실자재 상점. <크로싱 헤네시>의 탕웨이가 앉아있을 것만 같다.



Police Married Quarter의 줄임말로 엣 경찰관 관사를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시켜놓았다. 사실 이 동네를 여러번 지나치면서도 이런 공간이 있는줄 몰랐다. 다 주성철 기자님 덕분에…



내부의 룸들을 각 공방에 할당해 갤러리 겸 샵으로 운영되는 구조가 흥미로웠다.



닌텐도나 타미야같은 대기업 점포도 입점해 있었는데, 덕분에 타미야 샵에서 어릴적 갖고 싶던 모터도 구경했다.



날이 너무 더워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티샵에서 자스민차를 주문해 땀을 식혔다.



그리고선 다시 미라클모닝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예전엔 고수 맛이 너무 심하게 느껴지던 침차이키의 카레국수인데, 이렇게 나이들어 먹으니 그렇게 거슬리는 맛도 아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구나 싶었다. 카페로 옮겨 땀을 좀 식히고 각자의 삶으로 흩어졌다.



구룡반도에서 가보고 싶던 영화관인 브로드웨이 시네마티크으로 향했다.



굿즈샵이나 영화관에 입점한 서점인 kubrick이 대단하다 들었는데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그저 그랬다. 그나저나 옛 한국 영화 팜플렛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그 그룹에 <만남의 광장>과 <닌자 어쌔신>이 포함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홍콩의 영화 티켓값도 궁금했는데 이 지점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2~3만원대 같았다.



이젠 정말 가고싶은 곳이 똑 떨어졌다. 사실 가고싶은 곳은 많지만 해가 지기 전까지 남은 3시간정도 동안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었다. 구글맵을 켜고 잠시 고민 끝에 홍콩문화박물관에 다녀와보기로 했다. 박물관이 있는 샤틴은 가보지 않은 동네기도 했고, 또 박물관에서 홍콩 엔터테인먼트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하기에. 버스를 타고 라이언 바위 공원을 가로질러 넘어간다.



홍콩 식 리모델링.



버스정류장에 내려 걸어가는 길이 아름다웠다.



생각보다 크고 화려한데, 또 한편으론 투박해서 신기했다. 김용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조소로 옮겨놓은 것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쪽에는 재주가 없어 건너뛰었다.



경극에 대한 상설전이 있었는데 사실 경극은 좀 creepy하며 무서운 부분이 있어 대충 훑었다. 전시 중간에 interactive하게 내 얼굴에 맞춰 경극 분장을 해주는 부스가 있었는데, 좀 웃음이 났다. 어제까지 이런 비디오와 3D에 결합때문에 머리가 지끈했는데 이렇게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응용의 예를 만날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조악한 퀄리티가 되려 B급 감성처럼 좀 웃겼다.



그리고 이동한 다음 전시.



홍콩의 엔터테인먼트 역사를 훑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둔 것이었는데, 새롭게 알게되는 내용들은 많이 없었다. 대신 잘 정리된 서베이 논문을 읽는 것처럼 다시 머리에 상기시키는 효과가 톡톡했다.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건 실제 매염방과 장국영의 의상을 볼 수 있는 코너였다. 매염방이 마지막 콘서트에서 입고 빠이빠이를 외치며 뒤돌아 올라가던 그 의상을 실제로 보게될 줄은 몰랐다. 작년에 본 영화 <매염방>과 마지막 콘서트 영상이 뇌리에 맴돌았다.



장국영의 콘서트 의상도 놀랄 노자였다. 이렇게 갸냘픈 몸매의 소유자일 줄이야. 원본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며 보관해준 이들의 노고가 감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향한 곳은 매염방 특별전.



<연지구> 속 매염방을 그린 소묘가 괜시리 마음 아팠다. 그녀의 필모그래피 속 명장면들을 편집해 상영하고 있는 코너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리고 이소룡 특별전으로 향했다. 이 특별전은 내부 촬영이 불가해 눈으로만 즐겼는데, 이소룡에 대해 알지못하던 사실들을 꽤나 많이 알게 되었다. 차차차를 잘 추는 줄도 몰랐던터라 사진과 클립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다. 스크린 밖 이소룡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담아낸 손글씨와 사진들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그가 촬영 때 입거나 사용하던 의상들이나 쌍절곤같은 소품들을 볼 수 있었다. 노란 츄리닝을 직접보게된 것도 생각해보면 굉장히 뜻깊은 일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에 들러 기념품을 구경하는데, 마땅히 살만한 것은 없어 아쉬웠다.



박물관 앞마당에 세워진 거대한 이소룡의 동상. 내년엔 이소룡의 영화들을 쭉 정주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린 호넷>부터!



박물관에서 나오니 저녁을 먹을 시간. 매콤한게 땡겨 마파두부 맛집을 찾아 헤맸다. 결국 마땅한 곳이 없어 완차이의 유천클럽에서 포장을해 호텔로 돌아왔다.



시원한 맥주도 한 잔 곁들이며.



호텔에서 보이는 다른 집의 창문의 빛이 꼭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홍콩에 거주하며 이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서 무덤덤해지는 프라이버시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나 역시도 그냥 커튼을 열어두고 생활했던터라. 아쉽게도 호텔 창문이 코팅되어있지 않아 외부에서도 나를 볼 수 있었는데, 타인이 나를 보는 것보다 내가 밖을 보는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거주하게되면 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지로 옮겨갈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느지막히 일어나 체크아웃 때까지 뻐기다 공항으로 이동할까도 싶었지만, 그냥 일찍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홍콩대역까지 트램을 타고 이동해서 호텔까지는 걸어오는 루트였다.





맛있는 파인애플번이 먹고싶었는데, 결국 먹진 못하고 다른 번을 먹었다.



이번에 가보고 싶었지만 못가본 스피크이지바도 지나쳤다.



대신 차찬탱에서 밀크티를 한 잔 했다.




나는 떠나지만, 거주하는 사람들의 일요일 바이브가 사뭇 좋았다.



일요일 아침의 활기찬 식료품점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어후 역시나 관광객으로서 좋은 거지 장기적으로 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가득 들었다.



아까 트램을 타고 지나치다 골목 사이로 보게된 벽화 거리에도 들렀다. 트램을 타고 쌩하고 지나치는 찰나에 이소룡같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보니 이소룡이 맞았다.



거리 한 구석에 톤다운되어 칠해진 집의 벽화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선 유난히 언덕을 많이 오르고 내렸던 것 같다. 땀은 좀 흘렸지만 많이 보고 즐겨 좋았다.



공항에서 완탄면 한 그릇을 땡기고 홍콩 여행 끝!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