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 Shanghai
한국의 추위를 피해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다 푸켓을 낙점했다. 발리가 더 가보고 싶었지만 겨울엔 우기라기에. 동방항공을 타고 상해를 경유했는데, 경유 여행자에게는 무비자 관광이 가능하다해서 하루를 스탑오버하고 상해를 구경했다.
너무 많은 매체로 익숙해진 상해였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게 아이러니였다. 수많은 영화가 담았던 과거의 상해는 지금은 더이상 없지만, 이런 기회로 짧게나마 맛보게 될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했다.
회사와의 계약으로 여행을 가는지 마는지조차 불투명하고, 앞뒤로 이러 저러한 일정이 가득해 여행을 가는 비행기에서조차 공항에 내려 어디로 가야할지 불투명했다. 이런 P식 해외 여행은 거진 처음이라 이마저도 좋았다. 인터넷이 끊기기 전 다급하게 받아둔 몇가지 상해 가이드북 전자책을 훑으며 가보고 싶은 곳들을 추렸다. 역시 메가시티답게, 1박 2일 일정에 맞춰 추리기가 어려웠다. 이럴 줄 알았음 더 길게 경유할 걸 그랬나하는 아쉬움까지도.
준비를 덜 해서인지, 겹쳐진 딜레이들 때문인지. 일부러 일찍 도착한 인천 공항에선 라운지 카드가 횟수 초과로 결국 면세구역 내 식당가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고, 비행기 옆좌석엔 계속되는 민폐를 반복하는 사람이, 무지하게 긴 무비자 경유객 줄에도 달랑 한 사람만 배치하고 다른 좌석들에서 펑펑 놀고 있는 이미그레이션 심사관들, 그래서 딜레이되는 수속에다가 터미널에서 대중교통을 타러 가는 길은 또 왜이리 멀던지. 메트로 패스를 사러 마그레브까지 뺑뺑 돌아 가야했던 것. 상해에서 오후 관광부터 시작하고 싶어 일부러 비행기를 점심으로 앞당겨 간 것인데 결국 숙소에는 해가 지고서야 도착해버렸다. 덕분에 기분이 꽤나 가라앉았는데, ‘원래 정말 하려고했던 본질만 하면 돼, 나머진 곁가지야’ 라는 생각을 되뇌이며 와이탄을 산책하니 마음이 샤르르 녹아내렸다.
인생이란.
중국 동방항공을 타고 간다. 너무 별로인 서비스를 상상해서였는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앞으로도 저렴한 티켓이 풀리면 종종 타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고생하며 돌아다닌 끝에 손에 넣게된 maglev 왕복 티켓과 메트로 원데이 패스. 이 한 장을 샀을 뿐인데 영수증을 네 장이나. 티켓은 반납할 필요 없이 souvenir로 가져가라는 말이 왜이리 웃기던지. 그냥 일회용이란 말인데, 중국식 생색이란.
상해 시내로 가기 위해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라는 Maglev를 탔다. 틸팅되며 속도를 올리는게 몸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일본 후지큐하이랜드에서 탔던 놀이기구 도톤파도 속력이 300km/h라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도달하는 속도에서 오는 무서움이 또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땐 정말 내장이 뒤로 빠지는 채 몸이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었는데.
마그레브는 롱양루역과 공항 두 역만 이동하므로 나머지 구간은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다. 어떤 기능을 위해 덕지덕지 붙은 부차적인 모듈을 설명할 때 좋은 예라는 생각을 했다.
숙소에 짐을 두고 나왔다. 첫 날 미술관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에 가고 싶었는데, 이미 클로징 타임에 가까워진터라 그냥 와이탄으로 향했다. 누가봐도 중국식 마무리.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 캔 사서 푸동의 야경을 안주 삼아 마셨다. 괴이한 동방명주가 완성하는 마천루. 폴란드 바르샤바의 러시아풍 문화과학궁전처럼 이국적이면서도 그 나라에 걸맞는 풍경이란 이런걸까.
와이탄의 오래된 건물들에서 오래도록 일하는 이들의 마음을 상상했다. 스튜디오 더블에이더블비가 커지면 공유오피스를 넘어 점점 더 좋은 오피스로 이동해 갈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얼마 전 슈카월드에서 근황을 들었던 루이싱 커피를 다시 만나다.
와이탄을 따라 걸었다. 흔한 유럽풍인데 역사의 스토리가 담기니 다르게 다가왔다.
뉴욕 월가의 황소를 만든이가 만들었다는 황소를 또 만났다.
와이탄에서 바라보는 동방명주. 영상으로만 만날 땐 괴이한 생김새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보니 상해 스카이라인에 잘 어울리는 타워였다.
와이탄에서 황푸강을 등지고 시내로 걸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이었는데,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에 빠지긴 어려운 두리안.
늦은 저녁을 먹으러. 생맥주인줄 알고 시켰더니, 칭따오 생맥병이.
마늘과 함께 갓 조리된 뜨끈한 공심채 볶음이 맥주 안주로 제격이었다.
마파두부는 고춧가루 맛이 씹혀 좀 텁텁했지만.
상해여인. 덕분에 영화 <색, 계>의 탕웨이를 떠올리다.
진마오타워 건물은 실물이 훨씬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오리엔탈리즘을 섞어달라 gpt에 요구하면 이렇게 만들어질까?
상하이타워 역시 실물에 감탄했다. 터닝 토르소처럼 말아 올라가는 것도 멋있지만, 라이팅을 이용해 내부의 빈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 압권이었다.
화려한 씨티은행 건물. 이상하리만치 에드워드양 감독의 대만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 그리고 둘> 때문일까.
시시각각 변하는 LED 조명이 멋있었다. 씨티은행 건물이 근방에서 가장 시각적으로 즐거운 LED art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동방명주를 향해 걸었다. 가까이서 보는 느낌은 또 어떤지 궁금해서.
국제센터 근처의 건물들도 신기한 형태가 많았다.
푸동쪽 강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와이탄을 구경했다. 황푸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반대였다. 우리의 옛 임시정부 요인들도 이렇게 번화한 와이탄을 구경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임시정부 사람들이 보는 상해는 어땠을까. 그땐 미국이나 유럽 열강보다 중국을 동경하는 시기였을까.
동방명주 앞 굉장히 큰 육교 한 가운데 놓인 자판기가 재밌어서.
지하철 입구. 도시 곳곳에서 빅브라더의 터치를 느낄 수 있다.
첩자가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을 현지화하는 중국이 막상 편의점은 패밀리마트와 로손, 세븐일레븐 같은 일본 브랜드에 점유당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하듯 텅 빈 도시를 구경하려 했는데, 대차게 늦잠을 잤다. 그래도 최대한 일찍 나서 바로 달려간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유적지.
건물 모듈의 일부에 당시의 형태를 재현해 놓았다. 자료로 남아있는 과거의 상해 정부청사 건물 사진은 지금과 형태가 다르던데, 어찌된 일일까. 내부는 촬영이 불가해 눈으로만 담았다.
신천지라는 너무 아름다운 구역에 위치해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거리를 가득채운 그림자 사이에.
당시엔 어땠을까,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곳에 드나들었을까 무척 궁금해진다.
중국식 정원이라는 예원으로 향했다. 예원으로 가는 길에 오래된 가발샵이 많아 의아했는데, 예원에 도착하니 화단에 걸터 앉아 하나둘 가발을 장착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납득이. 어쩌면 인생에 한 번 뿐일 방문에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예원 상점가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인터넷 정보와는 다르게 성젠바오를 파는 곳이 없었다. 한참을 돌다가 예원을 포기하고 근처 동네의 성젠바오 음식점으로 출발.
어차피 내부 시그널에 정보가 들어있어 한국도 신호등만 교체하면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다 의지보다 돈이 문제라 귀결되며 생각을 접었다.
상해는 대체로 따뜻했다. 외투를 벗고 반팔에 셔츠 하나만 걸치고 다녔는데도 땀이 나기도. 그래도 상해 사람들은 겨울이라 추운지, 오토바이에 방한 이불을. 저 멀리서 단체 오토바이가 달려오는데 모두가 방한 이불을 끼고 있는 모습은 좀 웃기기도 했다.
드디어 음식점에 입성했다.
근데 생각보다 만두피가 두꺼워 좀 실망했다.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먹었던 얇고 바삭한 성젠바오를 상상했는데. 이게 상해식이라면 그건 어디식이였으려나?
푸켓행 저녁 비행기를 타려면 두 세시쯤에는 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어찌 보내야 하나 고민에 들었다. 더 깊은 시내로 들어가기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낮의 와이탄을 즐기기로.
루이싱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며 산책을 해볼까 했는데, 생각을 접고 2위안짜리 상해-푸동을 연결하는 페리를 탔다. 이번 여행 내내 회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계약을 진행해야 했다. 페리가 푸동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자축과 여행의 마무리를 기념하며 파울라너바에서 맥주를 한(세) 잔 했다.
반짝이는 강물을 보며 이렇게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또 열게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점점 발산하는 방향으로 달려간다. 신남으로 가득하기 보다 두려움이 함께 퍼지는데, 이런 걱정에 잠식되지 말아야겠단 다짐을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 횡단보도에서. 한국이었으면 모두 안전신문고행인가?
마지막 지하철에서도 만난 빅브라더의 터치. 지하철 역마다 있는 짐검사 요원들이며 도시 곳곳을 지키는 경찰들. 정부 인건비가 무지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이게 중국식 일자리 창출?
마그레브를 탈 수 있는 롱양루역에 도착했다. 18호선의 지하철과 그만큼의 exit이 있는 도시에서 용케 잘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했다.
최신식 기차와 그에 걸맞지 못한 수동식 스크린도어.
돌아갈 때도 속도를 준수하며.
영원한 난제. 입국할 때 적어내야 했던 서류에 최근 2년간 방문한 나라들을 적으라는데, 거기에 대만을 써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고민했던게 떠올랐다. 잘못 썼다가 경유 관광은 커녕 철컹철컹행 아닌가 해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왔다 생각했는데, 게이트에 도착하니 이미 탑승이 시작한 뒤였다. 공항이 트래픽에 비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켓에서 돌아올 때 한 번 더 푸동 공항을 경유해야 하는데 그 땐 텅빈 공항을 맘껏 만끽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