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3 / London #3
학회 발표일이었다.
아침의 짧은 산책이 무척 좋았지만, 하루 종일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로 좀 머리가 아팠다. 내가 잘하는 것과 잘 못하는 것, 그리고 내가 더 길러야할 소양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하루종일 비틀즈의 음악을 들었다.
학회는 9시 반 시작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버렸다. 호텔서 학회장까지는 3.5km 정도인데 걸어가보기로. 아침일찍 나선 덕에 카페서 아침을 간단히 먹었다.
아침의 걸어가는 길이 너무 좋았다. 월요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게 왜그리 좋았는지. 서둘러 출근하는 모습, 관광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모두 좋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도 기분좋은 발걸음을 움직였다.
하이드 파크,
버킹엄궁전,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지났다.
웨스트 민스터 사원이 보인다.
사원 바로 옆에 있는 Queen Elizabeth II Centre 가 학회장이었다.
워크샵은 월화 이틀동안 열리고, 본행사는 수목금동안 열렸다. 워크샵만 참여했다.
네임택을 받았다.
학회장서 바라보는 런던 뷰가 좋았다.
EyeWear 워크샵엔 생각보단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오전엔 키노트 세션과 포스터 발표, oral 발표가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근처 레스토랑을 알아봐 놨었는데, 런치박스를 제공했다. 학회장에 계속 앉아 먹고싶지 않아 박스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빅벤은 공사중이다.
템즈강변으로 나왔다.
학회장에 있을 때부터 계속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학회장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녔는데, 나는 무슨 직업으로 나를 먹여 살려야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잘하고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피해왔던 부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싶지 않아도 해야한다면 해야하는 것이 프로일텐데, 어쩌면 나는 대학 졸업 이후부터 계속 같은 쳇바퀴를 돌고있단 생각도 들었고..
전날 밤 유튜브에서 봤던 주성치의 소림축구와 쿵푸허슬 코멘터리가 생각났다. 미처 생각치 못했던 그의 삶에 대한 뜻밖의 자세와 마인드, 뭐 그런 것들.
오전 내내 오후 세션부터는 학회장을 빠져나올 생각이었지만, 점심을 먹고 다시 학회장으로 돌아갔다. ERP서 국외출장신청의 마지막 국위선양에 대한 체크박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도망쳤던 많은 순간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시내 관광을 마친 6시의 나보다 학회를 다 듣고 나오는 6시의 내가 스스로 더 뿌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후 세션은 생각보다 좋았다. 좋은 논문 몇 편을 알게되었다. 물론 그룹 디스커션은 알지 못하는 분야라 좀 힘들었다.
학회를 다 듣고 관광을 시작했다.
아까 대충 본 빅벤을 지나
무작정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우닝가 10번지.
더블데커에 붙어있는 원스어폰어타임인할리우드 광고가 사뭇 웃겼다.
Horse Guards Parade 를 지나
Admiralty Arch 를 지나
트라팔가 광장에 도착했다.
내셔널 갤러리는 오늘은 스킾.
세븐 다이얼스의 프레드 페리 매장에 들렀지만, 별 할인은 없더라.
레미제라블 전용관을 지나
카나비 스트리트의 닥터 마틴에 도착.
건너편에 스코치앤소다 매장이 있어 구경했지만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러쉬에도 들렀다.
샤워밤을 세 개 샀다.
Bond St. 근처 닥터 마틴 매장에도 들렀다.
별 소득 없이 더 북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다리는 좀 아팠지만, 베이커가를 걷는 기분이 좋았다.
남색의 스타벅스도 기분이 좋고. 시티크래프트 생각이 많이 났다.
베이커가 221b 에 도착.
박물관은 건너뛰고 샵만 구경했다.
메릴본로드에 있는 홈즈 동상.
영국 골목 담벼락의 작은 문이 좋다. 덕분에 곳곳의 막다른 길을 건너뛸 수 있었다.
다운트 북스로 걸어가는 길.
도착. 지은이의 추천.
다운트 북스는 정말 좋은 서점이었다.
책을 읽고싶고 사고싶게 만드는 마법같은 공간.
지하로도 내려가 여러 책을 구경했다.
수많은 이언 매큐언의 책을 뒤로하고. 수수께끼 변주곡을 사야하나 고민했지만
이번 런던 출장의 목적에 걸맞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샀다. 이번 겨울동안만 읽어도 성공인데.
엽서도
에코백도 탐났지만, 지은이와 커플백이 될 것 같아 잘 참았다ㅎㅎ
서점을 떠나는 발걸음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근처 세인즈베리에서 장을 봤다. 다시 생각해보니 왜 여기서 장을 봤는지 모르겠다. 호텔 근처 세인즈베리에 가지 않고. 어쨌거나 요일별 맥주를 구경했다.
camden town brewery 의 맥주를 종류별로 하나씩 샀다.
영국의 색감에 대해 계속 생각하며 걸었다.
그들 본성에 새겨진 컬러 스키마의 세련됨에 다시 생각하며.
하이드파크를 가로질러 호텔로 돌아가려 했다. 공연때문인지 공원 한 가운데가 막혀 좀 돌아가긴 해야했지만.
Knightsbridge.
호텔로 돌아가기 전 해러즈 백화점에 들렀다.
저녁으로 파스타를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