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너하임, 포틀랜드 / Aneheim, Portland
일본으로 이미 여행을 나와 있는 것인가, 일본에선 살고 있는 것인가. 미국에 다녀온 것은 여행으로 봐야하는가 일상의 연속인가.
으으, 일본에서는 사는거니까 로그에 쓰고 아무래도 미국에 다녀온 것은 여행에 써야할 것 같은데 뭔가 꼬여버렸다.
그냥 퉁쳐서 미국에 다녀온 감상을 여기에 남겨봐야겠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사실 미국은 가보고싶은 나라는 아니다. 굳이 가봐야한다면 아 메릴스트립이나 톰행크스 보러 가보고싶다 의 느낌이랄까나… 생각해보면 왜 미국을 가는게 불편한 지 금방 이유들이 떠오른다.
말이 많고 참견이 많고 흥이 많은데 알고보면 속은 엄청 깐깐하다. 신념이 투철하고 호불호가 명확하며 마트에서 물건을 하나 살 때도 서로의 기분을 묻는다.
자유롭다 못해 탈규제스러우나 실제로는 빡빡한 규제 투성이다. 땅이 넓어 건물은 낮고 길은 넓다. 잘 사는 이들은 한 없이 부자이나, 길거리엔 노숙자가 태반이다.
결정적으로 난 자유보단 규제에 더 맞는 사람 같다.
학회야 애너하임에서 열리니 꼼짝없이 5일은 애너하임에 있어야했고, 저렴한 비행코스를 찾다보니 서부에 있는 한 도시를 경유해야 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하기 전엔 당연히 시애틀이라고 생각했다. 막연히 생각했던 가장 가보고싶은 미국의 도시는 시애틀이었는데, 막상 여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그게 또 아닌 것 같았다.
샌프란을 가야하나, 아님 LA? 그냥 시애틀? 고민하던 찰나 전혀 생각치도 않았던 포틀랜드가 툭 튀어올랐다.
나이키의 본고장, 킨포크의 도시, 힙스터들의 놀이터 뭔가 알 수 없는 양파같은 도시라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백인의 비율이 높은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라는 얘기를 보는 순간 게임은 끝나고 난 이미 포틀랜드행 여정을 결제했다.
잠시 애너하임 얘기로 돌아가야겠다. 시그래프는 아침 9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진행되었기때문에 사실상 어딜 관광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학회 시작 전날 부랴부랴 디즈니랜드파크에 다녀왔고 학회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디즈니 캘리포니아 어드벤쳐에 다녀왔다. 두 개 모두 twilight 입장으로 저녁 4시 이후 입장 가능한 티켓을 썼다.
학회는 흥미롭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흥미로운 논문들이 있었으나 그 외의 프로그램에선 그다지, 그저 그랬다. 기대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좀 그랬다. 내가 그래픽스 업계가 가고 있는 길에서 너무 곁다리 길로 가고있는걸까?
여튼, 애너하임에선 심심하고 무서운 일상이 계속 되었는데 포틀랜드에 넘어가서 좀 많이 무장해제가 되었다.
포틀랜드는 뭐랄까, 트램도 다니고 건물 스타일도 그렇고, 유럽의 어느 도시라 해도 믿어질 것 같았다. 다시 부다페스트에서 지내던 시절 주말을 끼고 어디에 놀러갔던 그 기분이 들어 잠시나마 과거로 돌아간 느낌도 느낄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tax 가 없는데다가 세일도 많고, 좋아하는 브랜드도 많아 쇼핑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올 때 캐리어를 하나 더 사올 걸 그랬나보다. 어차피 한국 가져갈 때 캐리어 추가해야 할 것 같은데. 택스 없는 곳에서 싸게 사올걸.
포틀랜드에 막 도착할 때에는 3박 4일이나 머물러야한다니, 내가 미쳤지 왜이렇게 길게잡았지 후회했는데 막상 여행을 하다보니 3박 4일이 딱 적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별다른 관광지가 있는 도시가 아닌데 3박 4일이나 필요하다는건 거리 거리가 얼마나 좋은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나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포틀랜드가 이렇게 꽤 괜찮은 도시였으니까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보스턴도 가볼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일본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