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 Boyfriends and Girlfriends

1987 / Éric Rohmer / IMDb
★ 3.8

처음 본 에릭 로메르의 영화였다. 계속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이번 11월 왓챠챌린지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그의 수많은 역작 중 가벼운 시작으로 좋다해서 보게 되었는데, 거진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의 느린 호흡으로 영화를 보게되었다.

최근에 본 <우연과 상상>을 비롯해 이 영화에 뿌리를 둔 수많은 영화들이 스쳐지나갔다. 이제야 좋은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그동안 다른 영화들을 찬찬히 봐오지 않았다면 에릭 로메르의 영화가 좋은 줄도 모르고 봤겠지 라는 생각도 하며. 어떤 걸음을 걸어도 그게 모두 성장을 위한 발걸음이라는게 기쁘다. 뭘해도 좋으니 어떤 방향이건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이 위안으로 다가온다. 또한 아직 탐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화와 영화감독들의 존재가 삶에 긴장과 흥미를 부여한다.

에릭 로메르를 일찍 알았다면 달라졌을 점은 반드시 그의 영화를 이전에 작성한 MovieColorSchemer 논문의 테스트 대상에 포함시켰을 것이란 것이다. 엄청난 색감을 자랑하는데, 그게 어떤 보정작업의 영향이라기 보다 의상이나 소품을 활용한 것이 흥미롭다. 단 한 프레임도 그냥저냥한 색을 쓴 게 없는데, 그 모든 색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부합하는 것이 신기했다. 형식과 내용의 조화가 아름답다. 근데 아쉬운건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어떤 efficiency와 관련된 내용에는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바라, 그게 좀 아쉬웠다면 아쉬웠달까.

87년의 프랑스 파리 근교의 모습의 놀랍도록 낯설지 않다. 거리와 사람들, 집 내부 인테리어와 행복을 꿈꾸는 방향이 2024년의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닮아있어 놀라웠다. 현재 Cergy-Pontoise는 어떻게 되어버렸을지 궁금해 구글맵을 통해 구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80년대에 신축된 주공아파트 같은, 이제는 낡고 바래져버렸을 공간을.

모나미 모나미~ 소리가 반가웠다. 얼른 다음 영화들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