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 더 자키 / Kill the Jockey
2024 / Luis Ortega / IMDb
★ 3.2
2024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한 첫번째 영화였다.
볼까 말까를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했었다. 예고편에 낚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도, 이번이 왠지 이 영화와 내 인생의 선이 가장 가까워진 순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몸이 좀 고생하는 것으로 하고 첫 영화로 낙점했다.
슬픈 예상은 항상 빗나가지 않는 법. 반짝이는 예고편은 초반에 모두 등장하며 빛을 바랬다. 분명 영화가 시작된 뒤 10분 정도는, ‘역시 보길 잘했어’ 싶었는데 점점 힘이 빠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굉장히 비선형의 서사와 전개를 이어져나간다. 덕분에 영화를 보며 영화의 흐름에 대한 confidence를 완전히 잃은채 그냥 너는 알아서 가거라 나도 알아서 보련다의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편집의 센스와 리듬은 무척 좋았는데, 그것뿐이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심사위원 안성재 쉐프의 말처럼 형식과 내용이 부합하는지가 관건이었다. 보여지는 것은 꽤나 그럴싸하고 어떻게 보면 아름답기까지 한데, 그 콘텐츠가 형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보면 인스타용 식당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는 그런 간당간당한 느낌이었다. 물론 인스타 영화 치고는 어느정도 깊은 맛이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육수를 직접 우리긴 우린, 그런데 대가의 깊은 맛까지는 아닌.
이상하리만치 이 영화를 이탈리아 영화라고 착각한 순간이 많았는데 이따금씩 들리는 스페인어에, 아 맞다 이 영화는 아르헨티나 영화야라는 사실을 상기하곤 했다.
그래서 모두 행복해졌는가가 궁금하다. 나도 가끔은 그런 순간이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내 의견을 접고 따르다가 새까맣게 탄 삼겹살을 넘기며 “이제 됐지?“라고 해버리는 순간. 혹, 주인공 레모가 선택한 회귀가 완전한 자의인지, 타의에 의한 자의인지 궁금해져서.
영화를 다 보고 나오는데 에스컬레터에 나란히 선 어떤 분이 건네는 팜플렛을 보니, 부산국제영화제 퀴어 프로그램 목록이 담긴 종이였다. 난 사실 보는 내내 이 영화가 퀴어영화라고 생각도 못했다. 다시 되돌려 생각해보니 다분히 그런 영화였다. 생각이 그만큼 진보해져 버린 것인지, 사회가 변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