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
2024 / Jung Min Oh / IMDb / KMDb
★ 4.0
어린시절 나는 명절을 좋아했던 건지 싫어했던 건지 모르겠다. 겁이 나면서도 신나기도 했다. 며칠을 신나게 놀고 헤어질 땐 아쉬움도 한 스푼 남았던걸 보면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면서, 영화의 현실적인 고증을 듣고 있자니 벌써 지겨운게 싫었던 것 같기도. 윤가은 감독에 이어 K리얼리티로 PTSD를 주는 영화 리스트를 뽑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장편영화 입봉작으로 참 어려운걸 찍었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계절을 그것도 시골에서 담아내는건 예산에 있어서도 기술적으로도 꽤나 어려운 시도였겠다는 생각을 했다. 카메라 한 대로 열심히 찍어봤다는 한재림 감독의 <연애의 목적>을 떠올려보면 처음이기에 가능한 용기와 패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크레딧을 보며 제작비가 얼마였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라디오스타에서만 부부로 인지되던 정재은 배우와 서현철 배우가 부부로 나오는게 재밌기도 했다.
두부공장에서 모락모락 흘러나오는 수증기 사이로,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는 커다란 나무 아래로 나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나도, 그리고 새로 태어난 조카도 걸어가며 세상을 이어나갈 모습이 선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태초부터 그렇게 이어져 내려온 세상, 그리고 그 물줄기를 이루는 나라는 물방울.
감독과 우리가 동년배다보니 아무래도 영화 속 카메라는 우리의 위치에 놓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가장 건강하고 스스로 현명하고 똑똑하다 착각하는 우리가 대하는 어른들의 세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정민 감독이 도시에서 영화를 찍으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궁금해졌다.
두부공장을 고향에 두고 도시로 나온다 해서 지워지겠는가, 그 공장이, 마음에서. 그래서, 성진이는 그래서 대통령 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