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디셈버 / May December
2023 / Todd Haynes / IMDb
★ 4.0
진짜 토드 헤인즈 감독은 끝내준다! 영화를 정말 잘 만드는 사람이란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이번 영화에서 특히나 좋았던 것은 여러 플롯들을 적당한 길이로 쪼개어 중첩시키는데, 그 편집의 흐름이 맥을 끊기보다 환기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였다. 덕분에 캐릭터를 이해하면서도 점점 더 스토리에 몰입되어 가는데 방해가 없었다. 누군가는 방해가 된다 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사용된 음악과 사운드 역시 환기에 대단한 영향을 했다고 생각한다. 미세한 불협의 사운드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May December라는 단어가 나이 차이가 나는 커플이라는 뜻이란 걸 모르고 봤다. 알고 봤다면 ‘도대체 메이 디셈버가 무슨 의미야!’ 궁금해하며 보낸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데 쓸 수 있었을텐데.
주조연의 캐릭터를 가릴 것 없이, 각자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들을 뱉고 그런 행동들을 했을지 상상하는 맛이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나씩 해치우는데, 마음처럼 쉽게 되진 않았다. 어쩌면 그런 복잡성이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가지는 맛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는 나, 그걸 모른체 하는 나. 온 세상이 테이밍이다. 사랑도, 우정도, 모든 관계가 테이밍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들임이 싫으면 찰리처럼 떠나는 수밖에 없단 생각도. 어쩌면 내가 요즘 들어 열중하는 끝맺음 역시 그런 종결과 같은 맥락일까도 생각해봤다.
오프닝 타이틀의 타이포그래피는 속이 빈 아웃라인으로만 그려지지만, 엔딩 크레딧 속 타이포그래피는 속이 꽉 찬 솔리드 형태로 보여진다. 이 영화를 본 뒤 관객의 입장에서 나는 좀 더 나아진 방향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라는 것을 나타낸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단순한 디자인 요소였을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 수미상관이 좋았다. 크레딧의 스타일이 캐롤과 비슷해 끝까지 보고 나왔는데, endcrawl.com을 이용했다고. 세상엔 정말 멋진 서비스가 많아 정말~
그나저나, 아주 한국인의 기상과 기백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캐롤>만큼 좋은건 아니었는데, 영화 자체의 이유인가 배우의 이유인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토드 헤인즈의 다른 영화들이 너무 보고싶어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