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 Monster

2023 / Kore-eda Hirokazu / IMDb
★ 4.5

올해 부국제에서 보지 못한게 무척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시사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가고 싶었던지. 신춘문예같은 신청서를 보낸 덕인지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인지, 당첨되어 조금 일찍 보고 오게 되었다.

데뷔부터 어마무시하게 좋은 작품들을 쏟아냈지만 점점 무뎌지는 필모그래피를 보며 이번 작품도 그런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정말 의미 없는 걱정이었다. 더 영글어버린 시각, 의식, 그리고 기술로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것만 같았다. 러닝타임이 흐르는 줄도 모르게 완전한 몰입으로만 가득한 두 시간이었다. 좋지 않은 점을 떠올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서늘하고도 따뜻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다운 영화였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는 좋았던 점들.

  • 누가 뭐래하도 가장 좋았던 점은 영화의 구성이다. 생각해보면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심플한데, 이 한 구간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점으로 보여줌으로서 무형의 가치가 생성된다는 점이 놀라웠다. 영화 <라쇼몽>의 단순한 반복이나 변주가 아니라 집대성시키는 느낌이었다. 세 개의 시점에서 공통적으로 다뤄지거나 혹은 시점에 따라 생략되어지는 이야기들 역시 좋았는데, 영화를 그리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플러스가 되기만 했다.

  • 각 시점이 끝날 때마다 계속 괴물을 찾게 만드는 유인이 좋았다. 계속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다음 타겟을 마구 힐난할 준비를 하게 만들어 놓고선, 결국엔!

  •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의 등장이 좋았다. 이런 역할이 고레에다 감독이 정말 좋은 감독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특별한 장치들이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들. 세상이 좋다가도 무섭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사람들.

  • 다양한 사회 문제가 등장하는데, 원래 고레에다 감독이 관심을 갖던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믹스되어 등장했다. 아무도 케어하지 않는 요리, 변주된 부분이 있다면 취약층이 아닌 중산층임에도 여전히 케어받지 못한다는 것. 필모그래피가 쌓여갈수록 특정한 케이스에 주인공들을 가두지 않고 점점 더 보편적인 이야기의 범주로 확장해 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 안도 사쿠라는 <어느 가족>에 이어 이번에도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 전문 배우로?

  • 브라스를 부는 장면에선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화양연화>의 초우가 결국 앙코르와트의 어느 한 구멍에 아무에게도 할 수 없던 이야기를 쏟아내고 오듯.

  • 평범이라는 말이 주는 폭력에 대해.

  • 음악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영상과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음악.

  • 어쩌면 내가 좋아한 일본의 어느 한 면은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가 쌓아놓은 이미지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겨울엔 기필코 그가 집필한 드라마들을 하나하나 봐놔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 감독님께 되려 묻고싶어졌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무엇입니까. 그런 세상은 존재하나요? 이따금씩 세상에 존재하는 행복의 총량은 일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행복에 욕심을 내어도 괜찮을지, 문득 걱정이 되는 주말이었다.

  • 그나저나 거장이라면, 괴물이라는 제목으로 반드시 한 편씩은 내봐야 하는건가요? 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