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 Cobweb
2023 / Jee-woon Kim[https://www.imdb.com/name/nm0453518] / IMDb / KMDb
★ 3.8
추석 텐트폴 3대장 중 가장 기대되는 영화였다. 온라인에선 바빌론 꼴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미리 손절을 친 이들도 많았다. 결과적으로는 놀랍게도 3대장 중 가장 큰 즐거움과 감동을 준 영화였다. 감동까지는 아니었으니, 어쨌거나 깊은 인상이라 해야겠다.
신연식 각본이라 기대가 되기도 우려가 되기도 했다. 너무나도 극적이고 문학적인 신연식의 영화들은 이따금씩 선을 넘을 때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김지운의 진가가 발휘된 것 같다. 본인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부분만 극본에서 용인하고 다른 부분은 완전히 본인의 색으로 채워넣은 느낌이었다. 텐트폴 3대장 중 그 어떤 영화도 거미집같은 미장센을 보유한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센스와 사랑이 느껴지는 터치였다.
웃음이 팡팡 터지는 부분도 많았다. 그보다도 더, 이 영화는 꽤나 많은 부분을 배우들에게 기대는데 오정세를 비롯해 크리스탈까지 모두가 해줘야하는 연기를 풍족하게 해준 느낌이었다. 오정세와 박정수, 전여빈 그리고 임수정의 연기에서 이따금씩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한바탕 소동같았을 촬영장이 궁금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김기영 감독을 비롯한 한국의 옛 감독들을 떠올렸다. 신연식 감독이 거미집의 초안을 떠올린 상황이 궁금해졌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처럼 70년대풍 이야기를 먼저 떠올렸지만 해당 이야기를 레트로하게 찍기는 분량도 스타일도 애매해 촬영장이라는 또다른 이야기를 붙인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촬영장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린 뒤 하녀와 비슷한 이야기를 떠올린 것일지.
절대 불 속에서 세상을 잊은 채 몰두할 수 없는 나 자신. 나를 가장 사랑한 것도 나, 나를 가장 경멸한 것도 나.
김지운이 다시 불 속에서 살아나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