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 Smugglers
2023 / Seung-wan Ryu / IMDb / KMDb
★ 3.3
메가박스 시사회로 미리 보고왔다.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이 분명했는데, 아쉬운 것은 좋지 않은 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음에도 그냥 내버려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최동훈 감독의 초기작이 생각난다 하지만, 최동훈이라면 이 영화를 이대로 두진 않았을 것이다. 밀수는 굉장히나 류승완 감독 자체를 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보다 서사와 사건 중심으로 관객을 이끌고 간다. 이따금씩 올드한 연출과 늘어지는 편집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허투루 쓰려는 샷이나 대사 없이 야무지게 영화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결국 영화의 생명이 지속되는 것은 맛깔나는 대사와 임팩트 있는 조연의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좀 아쉽기도 했다. 타짜의 너구리와 같은 배역의 인물이 하나만 있었어도 플롯을 좀 더 꼬을 수도, 연결시킬 수도 있었을텐데.
상상을 뛰어넘는 캐스팅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에서는 100%를 달성하는 캐스팅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배우들이 각자 맡은 배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다른 영화에 가면 더 큰 비중으로 다뤄질 수 있는 조연 배우들이 이름 없이 등장해도 그냥 튀지않게 묵묵히 연기를 한다. 이병헌 감독이 이 영화를 맡았다면 해녀나 장돌이네 수하들의 가정사가 수두룩하게 나열되었을텐데. 적절한 생략이 꽤나 깔끔했다. 좀 아쉬웠던 배우가 있다면 최종원. 물론 좋은 연기를 하셨지만, 초반에 관객을 휘어잡는 흡입력이 필요한 파트였는데, 임팩트가 좀 약했다 생각한다. 예전에 영화 <1987>에서 김종수 배우가 아주 짧은 샷만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던 걸 생각하면 이번에도 충분히 그런 감정의 그래프를 만들 수 있었을텐데 생각이 들어 더더욱 아쉽다. 신선하고 찰떡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배우는 특히나 조인성과 고민시. 니트 셔츠와 깔끔한 헤어스타일, 선글라스까지, 조인성의 스타일링이 인상깊을 정도로 좋았고, 후반부의 실내 액션신에서는 동년배의 다른 배우들이 가지지 못하는 그 무언가의 아우라와 동정심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시 배우는 장면마다 편차가 좀 있기는 했지만, 본인을 내려놓고 완전히 배역에 몰입하는 것 같은 짧은 숏들이 꽤나 인상깊었다. 김혜수와 염정아의 배역이 서로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70년대 후반의 미술이 꽤나 잘 먹혔다는 생각이었다. 몇년 전 한국 영화들은 정말 못봐줄만큼 어색한 때깔이었는데, 로케이션에 꽤나 공을 들인 느낌이었다. 빨간색, 체크무늬 투피스를 각각 맞춰입은 김혜수와 염정아가 서로의 자켓을 바꿔입고 부둣가를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이 왜이렇게 웃기던지. 후엔 그 장면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함축적인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좀 아쉽다. 단순히 우연에 따른 그루핑에 따른 대결 구도 였다고 말한다면 그건 좀 비겁하다. 살아남은 그룹이 배 위에서 연대를 다지는 장면은, 다분히 감독의 의도적인 그루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더의 구도를 가져오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필. 사람들이 보고싶은 것은 속고 속이는 활극에 포커스가 되어있지 누군가가 누군가로부터 억압받고 그걸 다시 누르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특수효과와 CG에 있어서. 이거 실제 바다에서 촬영한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어색한 장면들이 몇 군데 있었다. 처음에는 합성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계속 보다보니 조명이 잘못되었던 것 같다. 물과 인물이 박리되어 보이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보인 CG 중에서는 그래도 너무 튀거나 모자라보이는 곳 없이 딱 해야하는 만큼의 제작비를 할애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랬을진 모르겠지만..) 서로의 손을 잡아당기며 상하의 포지션이 바뀌는 수중신에서는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 생각나기도 했다.
같은 시대,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세관공무원 최익현이 있었고, 이 영화 속 이장춘 경장이 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 또 다시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포인트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의 엔딩곡으로 사용된 노래를 찾으려 부단히 애썼다. 패티김이나 김추자라고 생각했는데,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였다. 뻔하면서도 뻔하지 않으려는 시도를 여러군데 보인 장기하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