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 / The Flash
2023 / Andy Muschietti / IMDb
★ 3.7
악마의 재능이란 이런 것일까. 배우의 물의에도 불구하고 개봉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감의 원천이란. 2시간 반이란 시간이 순삭되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호불호가 충분히 이해되는 시간이었다. 현실적이라기 보다 카툰에 가까운 CG에서 누군가는 언캐니 밸리에 갇히기도 하고, 누군가는 형언할 수 없는 황홀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바랬던 멀티버스의 환상을 꽤나 괜찮은 방식으로 시각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니콜라스 케이지,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을, 마이클 키튼, 벤 에플렉, 조지 클루니의 배트맨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긴 어려우니까.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에즈라 밀러의 연기가 정말 경이롭다. 왜 워너 브라더스가 포기할 수 없었는지 대단히 잘 알겠다. 플래시를 모르고도 잘 살아온 인생인데 앞으로 누가 나에게 인생의 히어로가 누구냐 물으면 플래시라 말해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 회사에서 어떤 파트를 만들었는지 너무 궁금하다. 크게 보면 Scanline, DNEG, Weta가 메인 축이었던 것 같은데 어디까지가 누구의 공이고 과인지 궁금하다.
얼마전 트랜스포머를 보며 느꼈던 결핍을 제대로 채운 느낌이다. 물론 트랜스포머와 플래시는 각각 반쪽자리라 서로의 장점만을 합치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텐데. 어쨌거나 두 영화 모두 편집이나 리듬에 있어서 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결국 되돌릴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무한히 반복하며 닳아버리는 베리를 보며 여러 단상이 떠올랐다. 영화 <소스코드>에서 제이크 질렌홀이 그랬듯,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서 한태주가 기찻길을 무한히 달려가듯.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나, 고대 철학에 대해 과학으로 무장한 현대가 대답하는 느낌이다.
문득 이 영화가 마블과의 경쟁에서 흥행의 분기를 흔드는 교차점같은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다시금 DC의 세상이 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