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와 로키타 / Tori and Lokita
2022 / Jean-Pierre Dardenne, Luc Dardenne / IMDb
★ 3.7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영화사 진진에서 5월 초 배급이 예정되어 있어, 겸사겸사 다르덴 형제가 내한하기도 했다. 다르덴 형제의 GV를 보고싶어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다르덴 감독들의 작품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이번 토리와 로키타가 첫 입문작이었는데, 켄 로치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중간 어디쯤에 놓인 느낌이었다. 켄 로치보다 따뜻하지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보다 날카롭다. 아침 일찍 전주로 내려가며 다르덴 형제 감독의 작품 세계 해설을 훑어봤는데, 크게 세 가지의 특징으로 축약되는 것 같았다.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 BGM의 사용이 현저히 적다는 것,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 문제 의식을 드러내는 날카롭고도 담백한 시선. 이번 영화도 그 공식에 알맞게 쏙 들어가는 작품이었다.
그렇다 해서 영화가 현인처럼 관객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버스에 탄 질문 많은 토리에게 흔쾌히 대답하며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히치하이킹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토리와 로키타>를 보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감독들은 관객에게 그 선택을 오롯이 맡긴다.
카메라 중심에는 언제나 인물 놓여있다. 인물이 움직이면 카메라는 그 인물을 따라가거나, 아님 패닝해 기어코 인물을 가운데 두고 만다. 공간을 훑거나 환경을 보여주며 영화의 컨텍스트를 이해하게 만드는 영화와 완전한 대척점에 놓인 느낌이었다. 다르덴 형제가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다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결연함이 엿보였다.
실제로 GV에서 만난 다르덴 형제는 유머도 말도 무척 많은 사람들이었다.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마음 속에만 품고 있는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이 설명 곳곳에서 흘러 나왔다. 한 평생을 집요하게 산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본능적인 대답들이었다.
토리와 로키타는 어떻게 살아가야 행복할까. 그들이 원했던 것처럼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체류증을 얻어 가사도우미로 지내게 되는 삶을 이루면 끝일까. 헝클어져 꼬여있는 사회 문제를 어디서부터 짚어야 할 지. 이해관계가 엮여 선과 악이 없는 사회 문제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은 없기에 머리가 더 지끈하다.
올 상반기엔 감독들의 다른 작품들을 부지런히 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토리가 로키타를 부를 때마다 너무 큰 목소리라 걸리는 거 아닌가 마음이 철렁철렁함..
영화제 제공 Overview
저마다 홀로 아프리카를 떠나 벨기에로 온 어린 소년과 사춘기 소녀는 어려운 이민 생활에 맞닥뜨리지만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우정으로 맞선다.
영화제 제공 Review
벨기에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의 열한 살 토리와 열여섯 살 로키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임에도 사람들에게는 남매라고 말한다. 그리고 토리와 로키타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타지에서 실제 남매보다도 더 깊이 서로에게 의지하는데, 이들은 식당을 운영하는 베팀이라는 남자에게 마약을 받아 소비자들에게 배달하고 수고비를 받으며 악착같이 살아간다. 특히 로키타는 생활비를 벌면서 고향 카메룬에 있는 엄마와 다섯 형제에게 돈을 부쳐야 하고, 자신을 벨기에로 올 수 있게 한 브로커에게 진 빚도 갚아야 한다. 베팀에게 성적 착취까지 당하는 로키타가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동 허가 비자를 얻어야 하지만, 심사에서 계속 탈락하고 만다. 그러자 베팀은 로키타에게 자신이 시키는 일을 하면 위조된 비자를 구해주겠다고 제안하고, 로키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토리와 로키타에게 서서히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다르덴 형제의 여러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토리와 로키타> 역시 회색빛의 벨기에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외된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며, 도덕적 양심에 질문을 던진다는 점과 시종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더욱 강렬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 특히 영화의 첫 시퀀스인 로키타의 이민 심사 장면부터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은 대단하다. 이민 심사가 시작되고 처음에는 로키타의 모습이 차분해 보이며, 대답도 약간은 형식적이지만, 그녀가 답하기 어려운 내용을 물어보자 모든 것이 변하고,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한다. 조금씩 흔들리는 핸드헬드 촬영은 그런 로키타의 심리상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르덴 형제의 작품에 워낙 비전문 배우들이 자주 등장하고, 대부분 뛰어난 결과물을 얻어냈던 것처럼 로키타 역의 졸리 음분두와 토리 역을 맡은 파블로 실스 역시 마치 실제 남매처럼 애틋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남매 아닌 남매의 비참하고 필사적인 삶은 직접적인 가해자인 마약상을 비롯한 악의 세력들과, 간접적인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국가 권력의 외면에 대한 분노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한 감동과 여운도 줄 것이다. (전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