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뤼미에르
Cafe Lumière / 2003 / Hsiao-Hsien Hou / IMDb
★ 3.7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 기념 영화’ 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고싶은 이유는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도쿄에서 찍었다는 것은 부수적으로 붙은 이유일뿐.
걸어도 걸어도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의 외양을 닮았다면, 카페 뤼미에르는 정신을 닮은 느낌이다. 단순히 모사에서 끝내지 않고 그 태풍의 안으로 들어가 더 큰 줄기들을 헤집어내는 것.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 안에서의 변주도 즐겁지만, 그 세계의 껍질을 깨어 바깥으로 크게 공전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데서 정말 좋은 장면들이 많았다. 예컨데, 요코가 타카사키에 있는 고향 집으로 올라가 실컷 자는 바람에 식사시간을 놓쳤고, 그 덕분에 늦은 밤 주방에서 혼자 먹을거리를 찾는데, 어머니가 잠옷차림으로 나오셨고, 상을 차리고, 요코가 카메라를 등지고 앉아 밥을 먹는데 그 옆에 비스듬히 앉아 요코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카메라 정면에 비추고, 아직 미혼인 요코가 임신을 했다고 알렸을 때의 어머니의 작은 표정과 행동의 변화, 그걸 감싸는 빛, 이 모든 시퀀스를 가만히 요동 없이 바라보는 다다미숏의 카메라.
아마도 이 장면만으로도 ‘왜 이 영화가 100주년 기념 영화였을까’를 이해시키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마쿠라와 도쿄를 이동하던 열차가 도덴으로 바뀌고, 노리코가 가지고 다니던 작은 손가방이 크로스백으로 바뀌었고, 개인의 일상에 대한 걱정의 타겟이 바뀌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결이 오즈의 영화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정말 신기했다.
영화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로만이 아닌, 오즈 야스지로의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
정성일 감독이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나눈 GV 의 일부를 옮기며 감상을 마친다.
정성일: 여러분들께서 지금 보신 카페 뤼미에르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의 16번째 작품이며, 여러분들이 영화 맨 처음에 시작할 때 보셔서 아시겠지만 오즈 야스지로 감독님의 생일, 즉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오즈 야스지로는 매우 특별한 사람으로써, 12월 12일에 태어나서 12월 12일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첫 번째 상영이 작년 12월 12일에 상영되었고, 다시 재편집을 거쳐서 올해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가졌습니다. 이미 여러분들도 보셔서 느끼셨겠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볼 때 마다 궁금증이 하나 둘 씩 늘어나기만 합니다. 요코의 대만 남자친구는 끝내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웃음) 하지메를 찾아왔다는 그 여자도 우리는 끝내 볼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무언가 말할 것 같지만, 끝까지 한 말씀도 하지 않습니다. 요코를 걱정하는 어머니는 그러나 요코를 낳은 어머니가 아닙니다. 자, 이 네 사람들은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은 여러분들이 보신대로 서로 각 4대의 전차가 서로 각자의 철로를 향해서 각자의 삶처럼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마지막 한 순간으로 이 영화는 마무리 지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첫 번째 질문을 준비하시는 동안 첫 번째 질문은 이 자리에 선 걸 기회로 여러분의 첫 번째 영광을 제가 빼앗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에게 이 수수께끼 같은 제목 “카페 뤼미에르”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