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Roma / 2018 / Alfonso Cuaron / IMDb
★ 3.9
같은 주제를 다뤄도, 누군가는 이렇게 풀어낸다. 슬프고 아름다웠다.
부끄럽지만 나는 꽤 최근부터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명확한 이유없이 흘러가고 어떤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이 혼돈 속에 빠져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항상 정답을 찾아 걸어온 삶에서 갈피를 잃고 서있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어디로 향해야할 지 목표도, 목적도 없어, 무기력한 상태로 가만히 서있는 현상유지만으로도 벅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을 놓지않고 살아가야한다는 점. 바로 그 사실이 현상유지를 괴롭히는 바늘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있게 만들어주는 구심점같기도해 더 머리가 아파진다.
클레오와 소피아, 두 주인공 모두 내 옆에 서있는 사람들같았다. 측은함보다는 그들의 선택을 관찰하는 데 더 애를 쓰는 시간이었다.
결국 스스로 깨닫고 발을 내딛어야 하지만, 그 과정까지 서로 돕고 기대는 것이 얼마나 좋은 불씨가 되는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플로우를 이렇게 그려낼 수 있는 이는, 세상에 몇 명이나 있는걸까? 아무리 자전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자신의 세상을 스크린에 이렇게 잘 옮겨놓을 수 있는 이는 또 몇이나 될까? 세상의 축복같은 느낌이다.
어쨌거나, 흑백으로 그려진 세상의 색감도 좋았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이 무척 좋았다. 오프닝에서 바닥에 물이뿌려져 천장이 반사되는 것은 어떻게 촬영된걸까 초반부터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다녔다. 분명 카메라가 비쳐야 하는데, CG로 지운건지, 반사가 안되게 기울여 찍었다가 보정해 핀건지. 인물을 따라가는 카메라도 좋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시대도 좋았다. 1987이나 박하사탕이 떠오르기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영화에서 답을 얻고싶어 마구 보고있지만, 결국 답을 찾아내야 하는건 나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