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 4
저녁 9시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니 자정즈음이었다. 돌아오는 차에선 바로 OST 실황을 틀고 소리를 빵빵질렀다. 여러 생각이 스치는데 자연스럽게 엮지 못할 것 같아서 생각의 흐름대로 나열해본다.
과거로의 플래시백 시작 전, 그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뒷모습은 이따금 등장했지만) 소품의 클로즈업 신들을 이어붙였는데도 공연장으로 나서는 설렘과 긴장이 스크린을 뚫고 그대로 전해졌다. 그때부터 범상치 않은 영화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대부분 카메라 프레임에 무언가가 걸쳐져있다. 스튜디오의 창문, 마이크, 인지하지 못한 물건들이! 미장센도 살리고 시대 느낌도 살리고 게다가 스크린 속 상황들이 2D를 넘어 2.8D 정도로 느껴져 좋았다.
누가 제일 잘한걸까? 끝내주는 배우들? 커버를 해준 마크 마텔? 제작자? 감독? 소품 담당? 조명 담당? 작가? 결국 다다른 결론은 그 누구 하나 모자란 사람 없었지만 퀸의 예상되면서도 예상되지 않는 리듬을 타는 듯한 편집의 공이 제일 크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척 자주 전율이 일었다. 곡이 좋아서인지 영화가 좋아서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클라이막스가 아닌데도 이따금씩 일어나는 전율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예산이 무척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요즘처럼 돈을 팍팍 써버리는 영화가 난무한 세상에서 어차피 돈을 쓸꺼면 대부분의 영화가 이정도 완성도는 나와줘야 되는거 아닌가?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상영관에 머물렀다. 이걸 만든 사람들도 결과물을 보고 본인들의 마스터피스에 놀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했다. 마치 보헤미안 랩소디를 녹음해 처음 EMI 에 들고가 틀었을 때 모두가 아무말도 꺼내지 않았을 때 처럼.
- 그나저나 그 장면에 나온 이가 마크 마이어스인줄은 상상도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 바로 20분짜리 라이브 에이드 영상을 틀었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벅차오른 감동이 재현한 ‘현실’ 자체에서 오는 것인지, 현실의 ‘각색’ 에서 오는 것인지, 둘의 시너지인지 아리까리 했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둘 모두 대단하다. 어쨌거나 오늘도 계속 Queen의 노래를 듣고있다.
스크린 속에서 러닝셔츠 차림으로 한껏 취한 흥을 뽐내는건 장국영이 마지막일거라 생각했는데!(ㅋㅋ)
영화가 끝나고 high 상태로 운전을해 집으로 돌아왔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온 세상이 신나보였다. 이런게 진짜 합법적인 마약이 아닐까.. 굳이 술과 마약이 필요한가 그런 생각을.
좋았던 장면이 여럿 있는데 막상 줄줄 나열하려니 어렵다. 일단은, 메리가 프레디를 찾아갔다 팩폭을 하고 차를 타고 다시 돌아가려 하자 프레디가 비를 맞으며 차문을 열고 대화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난다. 감정의 클라이맥스기도 했지만 카메라와 연기가 좋았다. 메리의 시선으로 차문을 열고 있는 프레디를 보는 샷이 길게 유지되는데 시선이지만 핸드헬드의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 있어 프레디의 삶에대한 의지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랄까.
보헤미안 랩소디 녹음의 재현도 좋았고, 초반 그들이 뭉치게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도 좋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퀸의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의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보여줄 것인가 고민 끝에 내린 지금의 결단도 좋다. 확실한건 영화가 질척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엔 Radio Ga Ga 는 그다지 좋아하는 곡이 아니었는데.. 끝나고 나니 정이 붙는다. 사실 영화 속 그 곡이 나올 때 나도 손을 뻗으며 호응하고 싶었다.
왠지 나중에 요긴하게 필요할 것 같아, 빳빳한 포스터 3장을 가져와 포스터 보관 파일에 넣어두었다. 좋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