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 3.5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는거라 예고편을 많이 보고 갔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김지운이 영리하게 예고편을 만들었단 생각이 들었다. 예고편이 관객을 낚는 스토리는 꼬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이야기는 몸통과 머리에 있는데, 정말 꼬리만 보여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실망하는 영화들, 내가 상상했지만 결국 실망만 하게되는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김지운의 꼬리밖에 안되는 이야기란 생각도 들었다. 몸통과 머리를 구상할 줄 알아야, 진짜 이야기꾼인걸까 생각도 들고. 물론 김지운을 마냥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몇 작품을 생각하면 좋은 이야기꾼이란 생각이든다.

그나저나 김장옥의 차갑게 식은 발가락이 콜드 누와르인걸까? 하하하

내가 너무 저 시대를 가벼이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도 뜨끔했다. 막연히 문화가 꽃피던 시대라고 치부해버렸던 것이 너무 챙피했다. 인생 한 둘쯤 독립에 바친다 하더라도 고귀한 희생이니까 그럴 수 있다 생각했었지만, 그 인생도 아름다운 인생들인데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했던가 염치가 없어져버렸다.

두 번 볼 영화는 아니지만, 송강호와 공유의 필모에 꽤나 인상깊은 연기였다 남길 좋은 작품이었다 생각한다. 후반의 이정출의 행동들이 누가봐도 총독부에서 의심할만큼 약해보이지 않았나 그 정도 눈치 되는 사람이었으면 벌써 만주나 상해로 넘어갔을텐데 하는 개연성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눈 감을만 하다.

재즈에 흐물쩍 넘어가버리는 의열단원들의 처단 장면 처리엔 조금 놀랐다. 이렇게 흐물딱 넘겨버려도 되는건가, 마음을 쓸어내렸지만 그들의 죽음이 그런 경쾌함으로 더 숭고해질 수 있다면야.

라스트 스탠드를 제외하고 요즘 김지운의 영화들에 실망중이었는데 밀정으로 다시 한 번 반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나는 쓰지 못할 교수님의 박사논문을 보고 온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