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 3.5

보기 전부터,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찝찝함과 울컥함이 있다. 짙은 안개에 가려있음에도 분명히 있다.

이 영화를 연극으로 봤다면, 아마도 동식과 홍매가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 때 감탄을 내질렀을거라 생각했다.

목적을 상실한건지 너무나도 뚜렷해서 그런건지, 지독하리만치 짚섶을 모아모아 웅켜쥐며 불속으로 뛰어드는 인물들이 아리송할만큼이나 측은했다.

그때그때의 최선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최악의 결과를 목격하는 것은 참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영화 초반 시퀀스는 내가 원래 그들을 알고있었던냥 넘어가게 만들정도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데, 연출과 연기도 발군이었지만 가장 놀란 것은 촬영이다. 어찌 그 흔들리는 바다에서 쫙쫙 갈라지는 배의 불빛을 담은건지.

정재일의 지금까지의 음악은 단 하나도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의 음악인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인상 깊었다. 따로 찾아들을 정도는 아닌데, 영화에 녹아들여 영화의 궁둥이를 툭툭 쳐주는 느낌까지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다 왠지, 먼 미래에 한국 영화의 한 기념비로 남을 것만 같아 빤빤한 포스터를 하나 챙겨왔다.

덧. 어떤 평론가의 말대로, 에필로그는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개인적으로는 같은 시기의 영화 명량, 군도보다 더 좋았다. 물론 우울에 익숙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기호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