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열 시 반 / Ten-Thirty on a Summer Night

Ten-Thirty on a Summer Night / Marguerite DURAS / KOBIC / ISBN-13 / ISBN-10

대학원생 때 손에 넣게 되어 이제서야 다 읽게되었다. 올해 여행을 다니며 끝내려고 가지고 다니기도 했는데, 결국 회사 셧다운이 시작한 토요일 오후가 되서야 끝냈다.

뒤라스를 처음 알게된 것은 영화 <연인> 때였던 것 같다. 그 뒤에 <여름비>, <히로시마 내 사랑>을 거쳐 이 <여름밤 열 시 반>까지, 짧은 뒤라스 훔쳐보기의 시간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뒤라스는 나와는 결이 맞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이란 생각이지만,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이 훨씬 많기에 이런 섣부른 판단을 접어야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영화에 비해 호흡이 길기에 어쩌면 이런 섣부른 판단이 내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거나 한동안 뒤라스 책은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마리아 가족과 클레르의 서사, 그리고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의 서사가 엉켜 한 줄기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구조이다. 재밌는 것은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는 실제로 말을 거의 하지 않는데, 그의 서사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지속된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로드리고가 실제 장면에 등장하지 않아도 그의 모습과 심정이 마음 속에 형태지어 남아버리는 포인트가 신기했다.

알면서도 술에 계속 손을 댈 수 밖에 없는, 스스로 인지했지만 늪을 빠져나올 길이 없는 인생을 구경했다. 어쩌면 빠진 늪에 가만히 있는게 지금 당장으로서는 마음이 덜 고통받는 지름길일테니까.

언젠가 다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지붕층의 방에 머물 때면 어딘가에 숨어있을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떠올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