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posted on 2024.10.20
희랍어 시간 / 한강
나도 모르게 마음을 한 켠에 누군가를 들이는 시간을 몰래 훔쳐본 느낌이다. 내가 기대고, 내가 기대어지게 되는 것이 어쩌면 내가 인생을 살며 켜켜히 쌓아온 경험과 기억의 축적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그 인생의 시간은 길었고 내 마음의 작은 문을 열어놓는 시간은 짧았다. 어쩌면 주인공들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상실에 대한 조바심이 그 시간을 더 단축시킨 것일지도 모르겠다.
눈이 멀거나 말을 잃는 것같은 명시적인 상실이 아니라도 암시적으로 같고있는 나의 상실들에 대해 생각했다. 플라톤을 중첩시키는 희랍어가 소설에서는 꽤나 중요한 중심을 잡아가는 요소였지만, 내 인생은 사실 희랍어 없이도 충분히 요동치고, 수렴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