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강

저녁을 먹으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전자도서관에서 바로 빌려볼 수 있는 시집을 빌려 읽었다.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이 괜시리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도 기분을 올리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자, 작가에게 보내는 최고의 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늘하면서도 차갑고 어두운 시선이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고 세상의 온기를 찾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책에 모든 시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었을 때 목과 혀에 가시처럼 턱턱 박혀버리는 음절들이 있었다.

눈과 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지프스처럼 인간이 짊어질 수 밖에 없는 고통과 책임에 대해 새각했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건강한 뇌와 심장도 있기 때문에 그 고통과 책임에 임하는 긴 마라톤을 견딜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마라톤이 괴롭고 힘들기만한 것이 아니라, 목적을 위해 달리지만 들풀도 보고 구름도 보는 알찬 행복들로 가득한 달리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좀 들뜨기도 했다.

책 뒷편에 함께 실린 해설이 시시콜콜하게 느껴지는게 아쉬웠다. 어떤 깊이의 동굴을 마음 속에 넣고 사시는지, 그 안에서 어떤 안락함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