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 주성철
지난번 홍콩 여행 전에 읽기 시작해 다녀오고나서 끝냈다. 10년만의 개정판이 나오며 이름과 표지 그리고 많은 내용이 바뀌어 담겼다. 덕후가 나 이만큼 안다고 늘어놓는 자랑이 아니라 혼자 즐거워하지 않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쓴 책이라는 느낌이 냥냥하다. 씨네21 기자시절부터 느껴온 주성철 기자의 특징이다. 좋은 것을 나누며 함께 깔깔거리고 싶은 사람. 글을 뚫고 나오는 신남에 나도 덩달아 신나기도 했다. 친구를 즐겁게 만든 재밌는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 들으며 틈틈히 구글맵에 마킹을 하는 시간이었다.
좋았던 구절들.
장국영이 마지막까지 살던 집은 몽콕에 있다. 몽콕 카도리 애비뉴(Kadoorie Avenue) 32A번지로 대스타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빌라다. 원래 한적한 리펄스베이에 대문에서 건물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족히 3천 평 정도 되는 4층짜리 집에 살던 장국영은 2000년대 들어 문득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어디에 살든 사람들의 눈에 띄거나 파파라치의 표적이 되기는 마찬가지여서, 굳이 숨어 지내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난 뒤 더 외로워졌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장국영과 이소룡의 마지막 집>
주로 중국에서 일하다 홍콩으로 돌아온 로저가 아타오를 만나러 요양병원에 가면, 언제나 함께 휠체어를 끌고 들렀던 공원이 있다. 청샤완 역 A2 출구로 나와서 동경가(Tongking Street)를 따라 쭉 올라가다 보면 푹윙 스트리트(Fuk Wing Street)와 만나는데, 푹윙 스트리트에는 요양병원이라 할 수 있는 ‘호효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설 병원들이 꽤 많다. 아마 아타오가 지내던 병원도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중략)
<심플 라이프>의 아타오의 기구한 삶에는 삶의 터전인 홍콩에도, 태어난 고국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픈 정서가 흐른다. “아타오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 입양됐다. 양부는 일제 침략기 때 살해됐고, 능력 없는 양모는 아타오를 양씨 가문으로 보냈다. 아타오는 그곳에서 60년간 식모로 살았다"라는 담담한 어조의 오프닝 자막은 영화 내내 유지되며 심금을 울린다. 아타오는 60년의 세월 동안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홍콩에서 살았고, 힘들어도 떠날 생각조차 못했다. 그렇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을 가족으로 생각하며 홍콩 바깥의 세상을 꿈꿔본 적도 없다. 바로 그 땅에서 태어났건,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왔건 많은 홍콩 사람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홍콩은 그들에게 그냥 ‘고향’이고 ‘나라’이다.
<홍콩인의 비애와 슬픔의 정서를 품은 도시, 청샤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