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밍량 행자 연작
차이밍량 행자 연작 / 전주국제영화제 / KOBIC
지난번 방문했던 전주국제영화제의 차이밍량 감독 GV에서 질문을 하고 선물로 받은 책을 계속 테이블에 올려만 두고 읽지를 못했다. 요즘 짜요와 매일 생산적인 일에 30분씩은 가져보자며 미라클 30분 일지를 적고있는데, 오늘의 생산성을 위해 책포장을 과감히 뜯었다.
차이밍량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하는데도, 다른 영화인들이 모두가 칭송에 가까운 존경과 사랑을 보내는 것을 보며 무척 궁금하던 때가 있었다. 올해는 그런 궁금증을 여과없이 해결해버린 한 해였다. 지난 번 GV에서도 그렇고, 그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참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심지가 굳은데 섬세하고 호탕하달까. 지멋대로 하고싶은대로 사는데도 여전히 인사이더의 바운더리에 놓여있는 사람.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이 있고 매료된 것을 끝까지 파헤쳐보려는 진심이 글자 너머로 전달되어 왔다.
결국 뽐뿌를 이기지 못하고, 책을 다 읽은 뒤 <안녕, 용문객잔>을 틀었다. 그리고 <날아라 슈퍼보드>에 가려져 잊혀졌던 <서유기>를 각잡고 읽어봐야겠단 생각이다.
좋았던 구절을 남겨본다.
행자 연작은 서유기의 승려, 삼장법사에게서 시작됐다. 대중 소설은 삼장법사를 왕의 명을 따르는 순종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지만 차이밍량이 읽은 고서에서 그는 저항의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 원본을 구하기 위해서 여행금지령을 거스르고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는 독립적인 영화제작을 선언한 차이밍량이 영화의 본질을 찾아 떠난 여정과도 맞닿아 있다.
- 평화로운 저항가, 문성경
차이밍량의 작품 속에는 텅 빈, 사람이 없는 공간이 많다. 그리고 침묵도 많다. 공(空). 하지만 공(空)은 절대 무(無)가 아니다. 공(空)은 살아 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기억, 미처 아직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가능성과 더불어 공(空)은 전율하고 빛을 발한다.
- 시간과 공간의 해방자, 에이드리언 마틴
차이밍량은 우리를 느린 시간 속으로 데려가 평소에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했다. 이강생이 무대 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있었기에, 비어잇기에, 그 여백으로 인해 이윽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새가 날아가는 것, 그 작은 것들을 소스라치게 감각할수 있게 된 것이다. 느림과 여백이 만들어낸 마술.
차이밍량은 공연 중간에 나간 관객들에 대해서 “정적을 깨고 나가는 관객의 발걸음 소리가 아름다웠다"라며 웃었다. 이강생에게 “관객에게 영향받지 말고” 공연을 해 달라고 당부했던 건 느린 것을 낯설어하는 우리에게 느림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경험할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었다. 관객이 공연을 보다가 나가건, 끝나고 나가건, 그것 또한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는가의 문제라는 것, 그는 오히려 “관객의 기대가 무너지고 실망하는 것을 더 원한다"라며 달관의 미소를 보였다.
빠른 세상에 느림으로 저항하겠다는 무모한 고집. ‘나’를 온전히 내려놓고 우연적이고 불확실한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 놓는 대범함. 날것 그대로의 거친 재료를 가공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는 도량. 이러한 것들은 어느 예술가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레시피지만, 이를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차이밍량을 칭송했을 것이다. 작위적 의도와 관념을 버리고 세상을 관조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 세상을 품는 용기, 김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