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로기완을 만났다 / 조해진
헝가리에서 영화 <로기완>을 촬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영화일지 무척 궁금했었다. 사람 이름일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또 특수임무를 맡은 어떤 요원들의 이야기라 넘겨 짚었던 것 같다. 탈북인에 대한 얘기라는 것, 로기완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원작 소설이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불안과 초조함이 병렬의 구조로 나타난다. 로기완을 탐색하지만 결국 화자의 머릿 속엔 온통 화자의 얘기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얽히고 섥힌 구조가 자칫 플랫할뻔 했던 소설에 탄탄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느낌이었다. 여기엔 좀처럼 성별이 짐작가지 않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한 몫 한 것 같다. 혼자 상상의 늪에 빠져 달나라에도 다녀와 버렸다.
러시아, 쿠바를 상상하면 항상 머릿 속에 떠올려지는 파랗고 누런 영화적 필터가 존재하듯 탈북인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탈출은 시작일뿐, 그 뒤에 연속되는 고독과 고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예능과 유튜브에서 보게되는 하하호호 신나기만한 탈북인 이미지에 절여져 있는 것일지도.
내가 브뤼셀에서 느꼈던 낯설음과 초조함을, 누군가는 더 극한의 경계로 받아들였을 수 있겠단 상상을 했다. 그게 크리스마스 마켓 부근의 겨울이었다면, 그 겨울의 온도가 굉장히 달랐겠다. 작은 체구의 까까머리 청년이 얼마 남지 않은 유로를 꼭 쥔 채 배고픔도 추위도 잊고 거리를 방황하는 뒷모습이 왜이리 상상되던지.
인생에 얹어진 죄책감들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었다. 결국 로기완의 환한 미소를 보며, 화자는 그 죄책감을 좀 덜었을까.
송중기의 캐스팅 소식을 몰랐다면 좀 더 다른 이미지의 로기완을 상상했을 것 같은데, 너무 처음부터 이미지를 고정시켜 읽게된 것이 조금 아쉽다. 시놉시스를 보니 책에 등장하지 않았던 캐릭터가 주연으로 나오는 등 각색이 많이 된 것 같은데, K신파가 무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