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 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 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 / 전주국제영화제
2021년 JIFF에서 훑어 읽고선, 제대로 읽고싶단 생각을 했다. 여름에 빌려 이제야 다 봤으니 무척 긴 호흡으로 책을 읽은 셈.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에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62명의 영화인의 생각을 모았다. 2020년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에서 2020년 11월에 출간된 책에 여러 필진을 추가한 한국어판이라 한다.
개인적으로 난 코로나와 OTT의 등장은 영화계에 양날의 검이었다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만 향유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건, 영화라는 매체가 살아감에 있어서 무척 큰 축복이지만, 그에 반해 양질의 컨텐츠가 만들어지지 못하는게 못내 아쉬웠다.
62인의 필진의 성향을 사사분면의 매트릭스에 찍어보고 싶을만큼 다양했다. “영화"라는 것이 어쩌면 단순히 영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소비하는 행동과 문화” 전반을 일컫었던게 아닐까 추측해보는 이들의 관점은 신선했다.
나 역시도 퀸즈 갬빗과 체르노빌을 보며 영화의 정의가 흔들린다. carefully edited 되었다는 점만으로는 영화의 unique한 정체성이 바로 서질 않는다. 영화란 무엇인가?
“스크립트의 행간을 찍는 것이 20세기의 영화라면 21세기의 영화는 행간의 호흡을 스펙터클의 속도감에 묻어 버리려 든다. 20세기의 영화와 21세기의 영화는 시간의 제약을 뚫고 극장과 다른 플랫폼을 통해서 상호 경쟁하며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20세기의 영화들을 반복 관람 하는 것을 즐기며 20세기의 영화 호흡을 계승하는 21세기의 영화들을 사랑할 것이다. 그게 꼭 극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영화라면, 또는 영화 호흡의 드라마라면, 언제든 기꺼이 노트북을 열 것이다.”
김영진 영화 평론가 <20세기 영화의 호흡이 지속된다면>
“영화는 우리이며 우리는 영화다. 그건 사람의 말이며, 생각이고, 두려움이자 희망인 삶이다. 그래서 인류가 지속되는한 영화 역시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 인류이다. 꿈꾸는 한 영화는 이미, 거기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강유정 영화 평론가 <이미, 거기 있었던 영화>
“이제 영화는 레거시 미디어로 규정되며, 온라인 플랫폼의 수많은 영상 콘텐츠들 사이에서 과거의 지위를 잃어 가는 중이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해 봐야 할 시점이다. 더 이상 영화를 어두운 공간에 다 같이 모여 대형 스크린을 주시하는 관람 형태로만 한정할 수 없다. 우리는 스마트 TV에서 또 모바일 기기에서 큰 이질감 없이 영화를 보게 되었고, 같이 있지만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같이 있는 관객들과 실시간으로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시네마틱(cinematic)‘이라는 영화 고유의 특질은 여러 포맷의 영상 콘텐츠에 영향을 주며, 영화의 기운을 나누고 영화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정종화 영화 연구가 <우리의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여덟 살이 되었지만, 학교에 갈 수 없었던 딸은 집에 머물면서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여름 우리는 네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중 한 편은 바다 건너의 친구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영화 만들기를 통해 투기 자본과 노동 집약의 결과가 아닌, 창작과 일상의 시간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삶을 경험했습니다.”
장건재 영화감독 <필요한 건 오직 시간뿐>
“그래서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영화 자체뿐만이 아니라 영화 문화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중략) 나는 코로나가 끝나면 사람들이 극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일부 평단에서는 극장에 가는 사람들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습관의 즐거움을 인간 행동의 동기라고 혼동하는 듯하다.”
달시 파켓 영화 평론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광활한 디지털 플랫폼에서 영화가 계급장을 떼고 벌여야 하는 콘텐츠 전쟁은 더 많은 관객과 수익을 위해 언제부턴가 점점 모험을 하지 않게 된 영화 관계자들에겐 경각심을, 영화에 대한 투자가 재개되길 기다리며 최근 드라마 현장으로 진출한 수많은 감독과 스태프 들에겐 다른 영상 매체의 미덕을 학습하고 익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들은 결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킹덤과 보건교사 안은영이 그랬듯 영화 특유의 영상 문법에 시리즈의 속도감 있는 호흡과 몰입의 스토리텔링을 녹여 내는 방법을 습득할 것이다. 또 관객이 떠난 극장에서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이들은 관객이 극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그 고민 속에서 시청각적인 경험과 감각으로서의 영화는 일보 전진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영화는 다시 한번 자신의 얼굴을 바꿀 것이다. TV가, 휴대폰이, 뉴미디어 플랫폼이 영화의 존재를 위협할 때마다 스스로의 약점을 인지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기어이 찾아냈던 그 순간처럼 말이다. 그러니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오직 폐허를 딛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 보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장영엽 씨네21 편집장 <다시 시작해 보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