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 윤혜정
아마 씨네21을 보다가 알게되어 학교에 구입신청을 했던 것 같다. 여러 매거진을 거쳐온 윤혜정 에디터가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해온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엮어 만든 인터뷰집이다. 받아보니 꽤나 두꺼워 언제 읽지 싶었는데 생각보다는 쉽게 읽혔다. 물론 그들의 인생이 쉽게 읽혔단 건 아니지만, 문체나 어투가 눈에 쏙쏙 들어왔다.
사실 이 책이 아마 (거진) 처음으로 쓰는 다 읽지 않고 쓰는 감상평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리흐테르의 마지막 챕터도 읽지 못하고 썼었지만 어쨌거나 내가 읽을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읽었었으니 제외.)
한 번 시작한 책을 다 읽지 못하면 마음의 짐으로 남아, 필요없는 죄책감과 마음의 빚에 시달린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그 책을 마주쳤을 땐 마치 죄인처럼 피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탈피하게 만든 건 다음 웹툰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덕분이다.
“완독에 집착하지 마라. 끝까지 다 읽으려다 아예 책을 멀리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인터뷰집은 그래도 천천히 완독해보려 했지만, 누가 금세 예약을 걸어버리는 바람에 당장 내일 모레 반납을 해야하는 상황에 봉착해버렸다. 반납을 했다 재대여를 해 읽는 방법도 있었지만, 내가 그런 마음으로 반납해 온 책들 중 다시 빌려 끝까지 읽은 책을 몇 권이나 되던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목차를 천천히 읽었다.
인터뷰어의 프롤로그를 읽었고 책의 방향을 눈치챈 뒤, 예술가들의 목록을 다시 천천히 읽었다. 다니구치 지로, 틸다 스윈턴, 박찬욱, 이자벨 위페르, 류이치 사카모토 정도가 내가 이미 알고있는 인터뷰이였으며, 그 외에 13명은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이였다. 전자의 인터뷰만 읽었는데, 읽는 내내 아쉬움이 좀 남기도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13인의 인터뷰에서 왠지 내 손을 잡아주고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단짝이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아마도 씨네21서 이 책을 알게된 후 신청까지 이어지게된 데는 ‘다니구치 지로’의 인터뷰가 있다고 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난 고독한 미식가는 드라마로만 봤지 만화는 아직 완독하지 못했다. 대신 ‘열 네살’ 이라는 그의 작품을 보고선 팬이 되어버렸는데, 그림체부터 분위기 그리고 그 형식과 이어지는 컨텐츠가 정말 좋았다. 국적을 지워버리며 심금을 울렸달까나.. 인터뷰를 보는 내내 그의 다른 작품이 보고싶어 손이 근질근질 했다.
그러고보니 재밌는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인터뷰로 실린 다니구치 지로의 인터뷰에서 ‘예술에서 형식과 내용은 별개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걸 언급하며 더 심오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은 사람은 열 번째 인터뷰이 박찬욱이었다. 박찬욱이 사진을 무척 많이 그리고 잘 찍는다는 사실도 인터뷰를 보고서야 알게된 사실.
가장 의외의 인터뷰는 류이치 사카모토였다. 내가 생각해온 그의 이미지와, 인터뷰 속 그의 이미지는 사뭇 달랐는데, 예를 들면 나는 그가 무척 고고하며 도도하게 날카로운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그는 생각보다 따뜻하고 심지가 굳은 그런 사람처럼 느껴졌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부터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매년 3월에는 일본에 머물며 지역 아이들과 오케 공연을 열거나 음악축제를 하는 것이 연례행사라는 사실은 더 의외기도 했다. 비슷한 (그렇지만 무척 다른) 아픔을 겪은 우리기에, 그 사실이 더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코다라든가, 전장의 크리스마스같은 그의 작품들이 무척 보고싶어졌다.
세상에 좋은 사람이 너무 많고, 좋은 작품이 너무 많다. 인간의 일생이 너무 짧아 좋은 것만 보고 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란 걸 몸소 체험하는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