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좀도둑 가족 / 고레에다 히로카즈
책은 영화보다 많이 친절하다. 행간이 읽히지 않던 부분도 시원하게 긁어주며, 이상하리만치 따라오지 않던 플래시백도 중요한 순간에 등장해준다. 설명되지 않고 다양하게 해석되던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읽힌다.
본인이 쓰고 본인이 만들어 다행이다. 좋은 글과 생각이 좋은 연출을 만나 서로를 빛낸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영화 속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는데, 이 감정을 표현했던 배우들에게도 그리고 그 연기를 이끌어낸 감독에게도 감사함을 느낀다.
옳고 그른 것을 말하지 않을뿐더러, 좋고 나쁘고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편을 들 수 없게 교묘한 감정과 관계의 장치들이 설정되어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한다. 생각해보면 영화를 보고나서 누구의 편을 들 필요는 없는데 나는 불필요하게 그래왔던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좀도둑 가족 속 인물들에겐 그러할만한 사정이 있었고 그 당위성이 이해된다. 각 캐릭터를 구축할 때 꽤나 그 인물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인물이 바라보는 다른 인물들에 대해, 그리고 다른 인물로부터 바라봐지는 그 인물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며 머리터지게 생각했겠구나 싶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오오…)
소설 속 모든 생각이 상상이라 생각치 않는다. 어느 포인트가 경험이고 어느 포인트가 상상일까 그 모호한 경계가 궁금해진다. 가령 51쪽의 노부요 일화는 분명, 경험 또는 일상에서 스쳐지나가는 그의 개인적 생각이었을 거라 추측하며.
p.51
타인의 행복에 트집을 잡아 있는 일 없는 일 멋대로 말해버리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노부요와 동료들은 굳이 말을 보태지 않고 함께 웃었다.
할 게 많은 새벽이었는데, 누가 이 책을 덜컥 예약해버렸다. 주문 신청 넣어 받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꼭 읽고 반납하고 싶어 읽고싶은 책 순서를 건너뛰어 먼저 읽게 되었다. 날이 좀 쌀쌀해 온풍기를 틀었는데, 중간중간 옆에서 잠든 살구의 손을 한번씩 잡으며 숨을 고르고 다시 책을 읽어나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