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 오즈 야스지로 / 박창학 옮김
어디서였는지, 이 책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도서관에 주문 신청을 넣었다. 앞부분엔 산문 몇 개와, 징집 당시 일기, 편지가 실려있고 뒷부분엔 본인 작품들에 대한 간단한 본인의 코멘트, 다른 이의 코멘트, 그리고 도쿄 이야기의 감독용 각본이 들어있다. 영화로 접한 그가 전부였던 내겐 꽤나 신선하고 즐거운 내용이 가득했다.
한국에서 거의 읽지 못하다가 도쿄에서 많이 읽었다. 시간의 여유때문인가? 도쿄 이야기 감독용 극본만 남기고 돌아왔다. 결국 이 책은 소장하고싶단 생각이 가득해 한국에 돌아와 바로 주문했다. 덕분에 도쿄 이야기 감독용 극본은 오늘 아침 침대에서 천천히 읽었다.
책의 제목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꽁치의 맛’ 에서 나왔다 생각했는데 37년 10월 17일, 전쟁터에서 각본가 노다 고고에게 쓴 편지의 일부 내용이었다.
1937/10/17 노다 고고 앞, 엽서
오늘은 신상제. 달이 보기 좋다. 창공을 저 멀리 바라보니 아베노나카마로의 심경입니다.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오즈 야스지로
읽는 내내 역사 속에 남겨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계속 상기되었다. 뭐랄까.. 산 사람의 냄새가 가득한 책이었달까나.. 쓰고나니 무척 이상한 말이다.
그가 중국으로 징집되었던 것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가져야할지 위안부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것 같다는 짐작을 내놓은 박창학씨의 말을 믿어도 될지 여러모로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라 세츠코와의 관계만을 생각했는데, 오랜 기간 연인 관계였던 모리 사카에란 이가 있었다는 사실도 책을 통해 알게되었는데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사실 내가 혼란스러울 필요는 없는데..ㅎㅎ
종군 일기는 날짜와 짤막한 그 날의 일상이 적혀있는데 나의 daygram 을 떠올리게 해 피식하기도 했다. 그의 나이 35세부터 38세까지 전쟁터에서 작성된 일기인데, 생각보다 본인의 나이듬에 대해 신경 쓰는 모습도 뭐랄까.. 인간적이랄까.. 종군일기의 날짜와 그가 친한 이들에게 보냈던 편지의 날짜를 맞춰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같은 날에 두 명에게 보낸 각각의 편지의 내용이나 딱딱한 정도의 차이, 그 편지들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적은 그 날의 일기같은 것들.
재밌었던 종군 일기 한 토막.
p.79
3월 6일 월요일
어쨌든 돌아가는 거라면, 바싹 잘 태워져서 포터블한 맨나무 상자가 되어 먼 길 일부러 구단까지 힘들여 오시는 수고 겪으시지 않게, 되도록이면 펄펄 씽씽한 산 몸뚱이로서 만나 뵙고 싶다 생각하옵니다.
p.117
5월 13일 토요일
병참에 가서 숙사 수속을 함. 담당자인 남자 말하기를 “오즈 야스지로. 쇼치쿠의 감독과 같은 이름이네요.” 내가 말하기를 “그렇다는 것 같습니다.”
글을 굉장히 잘쓴다는 생각도 했다. ‘영화의 맛, 인생의 맛’ 이르는 제목으로 1960년 12월 키네마준포에 실린 영화 연기의 성격에 대한 글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연기가 꾸미지 않아야 하는가, 현실보다 더한 표현이 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해 영화 제작의 전반의 과정을 적용시키며 본인의 생각을 풀어나간다.
도쿄 이야기의 각본은 영화에 비해 그 분량이 적어 슥슥 읽힌다. 그렇다 해서 그 깊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아침에도 꽤나 기분이 울적비스무리해버렸다.
좋은 구절,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많아 책에 포스트잇 플래그가 가득해졌다. 아직 보지못한 그의 영화가 많기 때문에, 꽤나 자주 꺼내보게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