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 마쓰이에 마사시
마쓰이에 마사시의 번역판 신작이 나왔단 얘기에 도서관을 찾아보니, 으으.. 누가 벌써 구매신청을 해놓고 빌려간 상태였다. 예약을 걸었다가 기다려 받고, 일주일이 좀 넘게 묵히다가 서울행 버스에서 읽었다.
마쓰이에 마시시의 글의 느낌이 좋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상쾌한 냄새도 좋았는데, 이 퀘퀘하면서도 코튼향의 느낌도 좋다.
‘출판사에 다니는 50을 바라보는 돌싱남의 이사 이야기’라고 한 줄로 못박아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의 사건들, 감정들, 그리고 인간관계를 한 권의 책으로 풀어버리는 뚝심이 좋다.
후미의 죽음은 덤덤했지만 아찔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잠시 아득해졌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문학부를 졸업해 계속 그 쪽 일을 해온 것 같은데, 전작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어떻게 하다 그에게 건축이 빠지지 않는 소재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절대 오래된 집에서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지만 오카다의 리노베이션을 지켜보며 켄상의 집을 떠올린다든가 퀘퀘한 나무와 먼지 냄새가 코를 훑고 지나가는 간접경험을 흠뻑.
괜찮은 구성과 문체였다. 책이 북유럽 감성에 깊게 빠지지 않아 다행이다.
좋았던 구절을 몇 개 옮긴다.
p.49
약속은 되도록 만들지 않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은 곧장 집에 왔다. 그 이전에 술로 기분을 풀 마음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취하면 괜한 말을 했다가 나중에 후회할 뿐이다. 상대방도 안줏거리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다.
p.61
그다음 주 월요일에 가나와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지만, 조심하라고 충고하는 내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거듭 들려왔다. 들뜨지 마라, 들뜨지 마라, 구멍에 빠지지 마라.
p.79
가나에게서 메일이 왔다.
‘다다시 씨의 오래된 집에 구경 가도 돼?’
가나의 메일은 아주 간단했다. 거기에 쓰여 있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갓 세탁한 흰 시트처럼 무덤덤하고 그저 바람에 펄럭펄럭 날렸다. 나도 따라하듯 어디까지나 무심하게 승낙하는 답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