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의 순간
데뷔의 순간 / 한국영화감독조합
이목을 끌 재료를 너무나도 많이 갖고 태어났다.
씨네21에 소개된 글을 보고선 바로 도서관에 신청을 했다. 감사하게도(?) 누가 벌써 신청해놓은 덕분에, 몇 주를 기다렸다 반납이되자마자 냉큼 빌려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다지 마음에 와닿는 글은 몇 편 없었다. 17명의 감독의 서로 다른 글들을 읽는 내내 머릿 속을 관통하는 공통된 생각들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17인의 감독들의 글에는 서로의 섹션을 서로들이 쉽게 넘나들고 있었다. 봉준호도 류승완을 질투했으며, 누가 누구의 밑에 있고 뭘 만들고 있으며 이렇게 성공하고 있다더라에 굉장히 민감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코 그 시기심이 나쁜 시기는 아니었겠거니, 혹은 그 시간들을 잘 버텨냈기에 지금의 그들이 있겠거니 곱씹어 보게 되었다.
글을 읽으면서 나도 그 우울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감독도 있었으며 (가령 양익준이라던가 임순례 감독) 덤덤한 말투에서 무한한 방관을 느끼게 하는 감독도 있었다. (허진호와 박찬욱이 대표적이겠다.)
가장 재밌게 읽은 글은 최동훈 감독의 글이다. 사실 별 대단한 얘기를 써놓은 것은 아닌데, 내내 나도 나중에 나를 이렇게 뒤돌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구절을 첨부하며 감상을 마친다.
시나리오를 쓰는 나만의 작법이 있다면, 일단 초고를 빨리 쓰라는 것이다. <범죄의 재구성> 초고는 그 2년 중 초반 4개월 만에 썼다. 내 지론은 그렇다. 어차피 쓰레기가 나올 테니 일단 빨리 쓰고 보자.
p.s. 참고로 이 책을 읽고서 가장 근질근질하게 다시 보고싶던 영화는 범죄의 재구성이었다. 곧바로 영화를 보았는데, 허술한 부분들이 눈에 띄고 읽히는 반면 여전히 두근거리고 유쾌했다.
여기에 나온 17인의 감독들을 천재라 일컬을 수는 없으나,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고는 말해주고 싶다.